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하급심의 판결이 유무죄로 엇갈리는 가운데 헌재가 2004년과 2011년에 이어 3번째로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어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 3단독 이춘근 판사는 지난 5월 17일 병역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박 모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병역의무는 국가 공동체 존립을 위해 가장 기초적으로 요구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것”이라면서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가 이와 같은 헌법적 법익보다 반드시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고 이에 따라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헌법상 허용된 정당한 제한으로 볼 수 있다”고 징역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에 앞서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 4단독 이승훈 판사는 지난 16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모 씨 등 4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지지만 반드시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만이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우리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면서 “피고인들은 양심과 인격에 따라 집총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없으나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의사를 밝히고 있어 병역법 제8조가 규정한 입영 기피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하급심의 엇갈리는 판결과는 달리 대법원은 그동안 이들 모두를 ‘유죄’로 판결해 왔다. 대법원이 하급심과는 달리 모두 일관되게 유죄로 보는 근거는 현행 병역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두 번씩이나 합헌 결정을 내린 것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헌재가 두 번씩이나 합헌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5년에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3명이 또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함에 따라 현재 3번째 위헌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헌재의 판결 결과에 대해 예단하기 어렵다. 이미 두 차례나 합헌 판결을 내렸으니 이번에도 합헌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으나 헌재 재판관이 진보적인 인사들로 대거 교체되면서 처음으로 위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병역의무에 대한 여론은 단호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만 따로 대체복무제를 시행할 경우 기독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의 반발과 함께 이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어렵고, 병역 의무에 대한 형평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그러나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청년들을 전과자로 만드는 현행 병역제도를 손질해 대체복무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기독교계는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의 병역 거부 자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한국기독교연합은 지난주 발표한 성명에서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전쟁을 위해 총을 들 수 없다는 논리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의 행위는 종교를 빙자한 명백한 병역 회피”라고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계는 헌재가 이번에 만에 하나 현 병벽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일 경우 국민의 의무인 병역제에 대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면서 사회 일각에서 거론되는 대체복무제는 평화 통일이 이루어 진 후에 모병제가 정착되면 그때 가서 시행돼도 늦지 않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국방의 의무는 절대적인 양심의 자유와는 다르다. 그것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국민 개개인이 져야할 의무까지 회피하면서 누릴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보여 진다. 따라서 이것을 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혼동할 경우, 그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지켜줄 국가는 존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군대에 간 나와 내 자식은 종교적 신념이 없다는 말인가 라고 물으면 국가는 뭐라 대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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