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좋은 일, 나쁜 일들을 겪기도 하고 사람들의 공격과 비난도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그에게 위로가 되셨고 소수이지만 그를 위로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의 마음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지금 사도바울의 주요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진리를 지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고 그것을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 진리를 잘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도 잘 가르쳐서 그들에게도 이 진리가 보존되게 할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잡혀서 감옥에 있었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23:11)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가끔 이렇게 주님께서 옆에 오셔서 이렇게 말씀해주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억울한 일을 당해 어려울 때도 주님께서 오셔서 그 어려움을 다 안다고 말씀하시면 참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27장에서도 사도바울이 큰 풍랑을 만나서 죽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 그 옆에 서서 위로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렇듯 험난한 길을 가면서도 그것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그를 위로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위로는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사도바울을 동역자들로부터 오는 위로로 큰 힘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딤후1:16-17) 오네시보로는 로마에서, 그리고 에베소에 있을 때도 사도바울과 함께하고 그를 도왔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혼자 외롭게 있는 사도바울을 자주 찾아와서 힘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사도바울이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어쩌면 사도바울을 찾기 위해 로마의 여러 감옥을 뒤졌을 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과 가까운 사람도 고난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네시보로는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사도바울을 격려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이 자기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이가 사도바울을 버렸으나 오네시보로는 달랐습니다. 사도바울은 주님과 몇몇 안 되는 이러한 성도 때문에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이러한 노력과 기도로 인해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 진리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두 가지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어떠한 위협과 유혹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해 전해주신 귀한 진리를 지키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것을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잘 물려줘서 그들도 하나님의 교회의 진리를 잘 보존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이 진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입으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 속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만 지킬 뿐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본을 보여 그들도 하나님의 진리를 잘 간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장 합동 해외총회 부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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