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승 자 목사

잠언 29장18절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다. 영국의 시인 셀리는 “젊은이여 네 이상의 돛을 저하늘의 별에 걸어라. 그리고 두 다리로 땅 위에 굳게 서라”고 노래했다. 이상을 품지 않은 젊은이는 없다. 꿈을 꾸지 않는 젊은이도 없다. 젊은이는 누구나 미래를 향한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푸른 꿈을 꾼다. 지금 사는 세상보다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가 있기에 이 세상은 활력이 있고, 역사는 발전한다.

꿈도 없고, 이상도 없이 모두 현실에 안주하고, 쾌락과 탐욕에 빠지면, 그 나라와 문화는 망한다. 현대의 재앙이라는 흑사병이나, 에이즈라는 질병도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대상을 잃었기 때문에 몸의 면역체계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나온 인류의 문명사를 보면, 이상과 꿈이 사라졌을 때,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졌을 때, 그 문명은 망했다. 또 꿈이 없는 나라는 망했다.

이 시대에는 이혼률과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 이것은 꿈이 없다는 증거이다. 서로 아름답고 좋은 삶을 살려는 의욕도 없다. 참고 견디는 힘이 없기 때문에 자살하고, 이혼하는 것이다. 이 문명은 위기를 맞는다. 꿈은 자기 밖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다. 자금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이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사람이나,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은 꿈이 없다. 남이야, 세상이야 어찌되었던 나만 편히 잘살고 보자는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곳에는 꿈이 없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꿈도 깨트려버린다. 대신 남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그런 사람은 세상을 추하게 만들고, 인생을 재미없게 만든다. 그렇다 자신 속에 갇혀있는 사람은 남을 괴롭히거나 쉽게 자기 자신을 꿈 꿀 수 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삶이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 내 삶은 내 것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것이요. 내 부모의 것이며, 내 자식의 것이고, 내 이웃과 내 친구의 것임을 알고 그렇게 사는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

꿈을 가진 사람, 남과 더불어 사는 사람은 함께 죽고, 함께 살 뿐이다. 자살은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게의 중심을 나에게 두지 말고, 이웃에게 두라고 하지 않았는가. 꿈은 더불어 사는 삶이다. 가까운 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소박한 꿈이다. 또한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민족통일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분단된 민족의 꿈이다. 또한 이 세상의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평등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꿈이다.

꿈은 아름답지만 꿈꾸는 사람은 고난받기 마련이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 꿈, 한갓 공상에 불과한 꿈, 그저 머릿속에만 담고 있는 꿈은 아픔을 주지 않지만, 쉽게 시들어 버린다. 꿈꾸는 사람은 자신을 깨는 아픔을 맛보아야 한다. 자신의 성을 허무는 아픔, 자신을 남에게 열렸을 때 받게 되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원대한 꿈을 키울 수 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이다. 낡은 자기를 죽이고, 새로운 자아로 태어나는 아픔을 끊임없이 겪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기 위해 낡은 자기죽음을 맛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득한 삶,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삶을 목말라하며, 그런 꿈을 꾸어 보자.

햇빛중앙교회•본지 후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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