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세기의 장사꾼 트럼프, 불안한 운전자 문재인, 희대의 재주꾼 김정은... 필자가 바라본 삼국 지도자의 모습이다. 실리 앞에서는 동맹도 없고 적도 없는 트럼프의 힘의 정치 앞에 희대의 재주꾼 김정은이 펼치는 묘기 정치가 판을 흔들고 있는데, 양자를 휘어잡을 만한 것이 없음에도 그냥 앞으로만 가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불안한 운전 정치가 이루는 협상이 지금 세계정치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정은의 묘기는 묘기라기보다는 특기인데 그것을 시의 적절하게 사용하는 솜씨 때문에 트럼프를 코너로 몰았지만, 트럼프의 힘의 정치가 오히려 김정은을 다른 코너로 몰고 있는 이 와중에 협상의 운전대를 놓지 않으려는 문 대통령의 몸부림이 애처롭게 보인다. 지금 미국으로 건너간 문 대통령의 분주한 발걸음보다 그의 마음은 수천 배 더 바쁠 것이다. 그에게는 양자를 중재해낼 만한 값있는 당근도, 양자를 위협할만한 힘도 없이, 오직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평화’라는 명분만으로 뛰고 있다. 그러나 정치에서 명분은 소중하지만, 현실적 이익이 담보되지 않는 명분은 폐기처분되는 것이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양자의 요구는 분명하다. 트럼프는 ‘완전하고도 불가역적이며 영구적인 핵 및 대량살상무기의 폐기’를, 김정은은 ‘확실하고도 분명한 체제보장과 충분하고도 빠른 핵포기 대가의 지불약속’이다. 문제는 이 두 요구 속에 문 대통령이 함몰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평화가 우리만의 것인가? 이것은 미국과 북한에게도 중요한 과실(果實)인데 마치 우리만 갈망하는 것처럼 이번 협상에서 ‘을’의 위치에 서야 하는지 모르겠다.

트럼프의 요구는 주한미군과 그 군속들의 문제, 나아가 미 본토의 안전과 직결된 것이고, 김정은의 요구는 완전히 무너져버린 북한경제를 부흥시키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이 협상이 실패하면 3자가 모두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것이고, 성공하면 3자가 모두 행복해 진다. 그러므로 우리만 수혜자가 되는 것처럼 구걸하는 자의 입장에서 삼자 협의에 임하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가 얻는 것 못지않게 그들이 얻는 것이 결코 적지 않다.

북한의 핵시설 폭파 현장에 우리 기자들만 함께 들어가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확인한 기사에서 정부가 마련한 특별기편으로 우리 공동기자단 8명이 북한 갈마비행장으로 간다고 보도되었다.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통일부 대변인의 말이 씁쓸하게 들린다. 이 정도라면 정부와 민간은 북한의 교묘한 재주부림에 좀 더 의연하면서도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 협상을 이끌어 가는 정부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언론 쪽에서 아무리 사건이 세계적인 관심사라해도 이 정도면 과감히 취재거부 성명이 나와야 했다. 언론이 정부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보면 이 정도의 희생과 결단이 아쉬울 뿐이다.

각종 NGO와 사회단체에서도 이런 흐름에 맞추어서 일사불란한 공동대응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은 개인 혹은 집단의 의견이나 이익은 중요하지 않다. ‘민주’나 ‘자유’ 등으로 비난하지 말라. 유치한 국가주의 혹은 애국주의라고 매도하지 말라. 굳이 그런 경향이 없다고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필자도 그 정도는 알고 누구보다 그런 사고를 비판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적 개념을 가지고 사태를 엄중히 보아야 한다.

이 삼자 협상이 잘못되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도 엄청나고 또 비용을 치른다고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떠나 우리가 힘을 모아 대통령을 도와야 하는 이유이다. 하여간 호불호를 떠나 문 대통령은 협상력을 고양시켜야 하고 협상카드를 다양화시켜야 한다. 정부는 야당의 비판도 겸허히 수용하고 협력을 구하며, 언론의 취재와 보도에 적극 협조함으로 국민 설득과 여론의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 이것이 불안전한 운전자의 모습인 문대통령이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스도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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