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박사
이 구문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해서 궁극적인 목표나 풍요로운 공간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활용된다. 구약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20 차례 언급되어 횟수로 보면 많지 않으나 상징성은 강렬하다(레 20:24; 민 13:27; 14:8; 16:14; 신 6:3; 11:9; 26:9,15; 27:3; 31:30; 수 5:6; 렘 11:5; 32:32; 겔 20:6,15). 종살이하던 출애굽 공동체가 다다를 목표 지점을 제시하면서 왜 굳이 ‘젖과 꿀’을 언급하는 것일까? 사실 이스라엘의 불평에 따르면 ‘고기와 떡’이라고 해야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출 16:3)

‘아름답고 광대한 땅’이기에 여러 부족이 차지하고 있었다(8절). 그렇다면 젖(bl'x')과 꿀(vb'd>)은 약속의 땅에서 나는 대표적인 토산물일까? 신명기는 가나안의 농산물을 소개한다. 밀과 보리, 포도주와 무화과, 석류와 감람나무, 그리고 꿀 등이다(신 8:8). 기원전 18세기 이집트 출신 시누헤(Sinuhe)는 가나안에 정착한 후 “이곳은 물보다 와인이 더 흔하다. 꿀이 풍부하고 올리브는 지천에 자란다”며 이곳의 풍요로움을 기록한 바 있다.<ANET, 19b> 젖과 꿀이 가나안의 대표적인 식품이라기보다 약속의 땅을 이상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유는 양이나 염소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소다. 치즈 또는 ‘엉긴 젖’은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 음식으로 이동할 때 유용한 음식이다(창 18:8; 신 32:14; 삿 5:25; 욥 10:10; 20:17; 잠 30:33; 사 7:15,22). 한편 꿀은 완벽한 음식으로 신의 음료라고 일컫기도 했다. 성서에 양봉이나 꿀의 수확에 대한 언급은 없다. 고대 이집트에서 꿀은 사자를 위한 미용재료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그 용도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꿀을 얻기 위해서는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강수량 그리고 넓은 초원이 필요하다. 벤시라는 젖과 꿀이 사람의 필요한 영양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양분이라고 설명한다(집회서 39:26). 일부 아랍 부족들 중에는 몇 달 동안 우유와 꿀만 먹고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젖과 꿀’이 가나안을 상징하는 음식처럼 언급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여기서 히브리 수사법을 살펴봐야 한다. 즉 메리즘과 달리 부분으로 전체를 표상하는 수사법(pars pro toto)으로 일종의 제유법이다.<Houtman, 358> 예컨대 두 강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주위를 메소포타미아로,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을 아메리카와 같이 짧은 형태로 부르는 방식이다. 결국 ‘젖과 꿀’은 가나안의 풍요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제유법이 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문명사적 의미로 볼 수 있다. 한 때 이북에서 ‘이팝에 고기국’은 인민을 배불리 먹여주겠다던 정치구호였다. 그저 주린 배를 채우는 일차원적인 욕구 충족 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젖(bl'x')과 꿀(vb'd>)은 일용할 양식을 넘어 고대 근동 유목민의 사회적 진보를 반영한 것이다. 우유는 발효시켜 보관과 맛의 차원을 끌어올렸고 꿀은 죽은 자를 위한 방부제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완전한 식품으로 인식한 것이다.

셋째는 메시아적 의미다. 이사야에 의하면 징조로 태어날 아이가 악을 버리고 선(bAj)을 택하게 될 때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고 선포한다(사 7:15). 그날에 먹는 엉긴 젖은 시간의 성숙을, 꿀은 메시아와 함께하는 식탁을 상징한다(사 7:22; 55:1; 욜 3:18).<Houtman, 357> 여기서 ‘젖과 꿀’이 신의 음식이라는 신화적 이미지와 맞닿는다. 따라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공간적으로 가나안을 지칭하지만 궁극적으로 약속의 땅 낙원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창세기의 에덴동산(창 2:8,15)이며, 이사야의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사는 곳이며(사 11:6; 65:25) 새 하늘과 새 땅이고(사 65:17; 66:22), 예레미야의 물 댄 동산(렘 31:12), 아가의 잠긴 동산(아 4:12)이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이 가야할 약속의 땅은 아름답고 광대한 초원이 펼쳐진 곳, 그리하여 주린 배를 채울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그곳은 출애굽의 목표로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상징성을 확보하게 된다.

/한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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