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중세 로마가톨릭은 말씀을 버려 세속화되고, 형식화, 교권 화되어, 타락한 부패공동체였다. 신앙이나 정치나 어느 제도도 오래되면 형식화되어 석화(石化)현상이 일기 마련이다. 나름의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들도 제도나 형식, 전통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형식과 전통을 과도하게 중시하다보면 형식이나 절차에 사로잡혀 시대와 흐름에 반응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생명력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마가복음 11:15-17절은 신앙의 원형을 잃고, 교권화, 형식화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당시 유대교의 현실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에 가셨을 때 성전제사와 제사 드리려는 신자와 제사장들을 돕는다는 나름의 미명(美名)으로 타락한 교권주의 자들과 결탁한 상인들이 서로의 편익과 이익을 공유하며 성전을 시장삼아 물건을 매매하고 있었다.

성전은 돈 바꾸는 상인과 순례자들, 비둘기를 팔고 물건 나르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예수님은 당시 성전의 상태를 강도의 소굴이라고 일갈하시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음을 비통해하시며 매섭게 책망하신다. 이 책망은 당시 교권을 가진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장로들의 부정(不正)에 대한 주님의 두려운 경고다. 예수님은 그들의 좌판을 뒤엎고, 상인들을 내쫒으시며, 책망하시니 그 일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궁리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막11:18. 바른)

그 시대 유대교의 타락상태를 가히 짐작하게 한다.

예수님은 성전정화사건 일주일 후, 예수님을 죽일 궁리한 자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당시의 교권은 죽이기로 작정하면 죽이고, 죽일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승천하신 후, 오순절 날에 다락방의 기도꾼들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셨다.

성령강림 역사로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됨으로 시대가 새로워지고, 신앙이 새로워졌다. 눈물과 회개와 탄식이 회복되고, 사람을 살리는 거룩한 은혜가 그 시대를 덮었다.

복음의 증인이 되어 이 땅을 구원하는 사명에 생명 바쳐 헌신하며 세상을 정복해 가던 기독교도 권력의 중심이 되고, 권력과 부와 명예를 교회가 장악한 중세에 이르러 유대교를 뛰어 넘는 교권화, 형식화, 세속화로 깊은 타락의 늪에 빠졌다. 자신들이 진리에서 멀어졌고, 이탈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데 그 심각성과 두려움이 있다.

그들은 신자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빼앗고, 자신들의 독점물을 삼았으며, 죄를 사하는 권세를 교회가 가졌다는 근거 없는 교리를 만들고, 중세교회가 성전(?)을 짓기 위해 면죄부(면벌부)를 파는 일까지 겁 없이 자행했다. 또 사원(성당) 안에 마리아와 성인(聖人)상(像)등 숫한 상들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게 했다.

그 혹독한 암흑의 시대에도 말씀을 품은 사명자들이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성도들에게 나누어주고,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려는 노력들이 있었으나 그 때마다 그들을 잡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죽였다. 그런 혹독함 중에도 성령의 역사는 계속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학자들과 사제들이 끊임없이 개혁을 부르짖는 중에 루터를 주께서 사용하여 쓰셨다.

독일의 사제 마틴 루터가 말씀에 사로잡혀 1517년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그 외침이 생각보다 울림이 커서 중세 로마가톨릭을 지진처럼 흔들었다.

하지만 루터가 중세의 최초의 종교개혁자는 아니다. 루터보다 100년 전 체코의 사제 얀 후스는 종교개혁을 외치다가 화형을 당했다.

체코의 프라하 광장에는 600년 전에 순교한 신학자요, 가톨릭 사제였던 얀 후스의 동상이 있다.

당시 프라하 대학의 총장인 얀 후스(Jan Hus. 1372~1415.7.6. 체코)는 면죄부를 판매하는 교황청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면죄부를 파는 교황은 가룟 유다와 같다”고 외쳤다. 당시 교황은 각 나라 황제 위의 황제였음으로 얀 후스는 죽음을 각오한 도전이었고, 결국 교황은 후스를 파문하고, 그를 화형에 처했으며 그의 저술들을 불태웠다.

후스는 옥스퍼드대학교 교수인 J.위클리프(John Wycliffe,1320~1384. 영국의 선구적 종교개혁자)신학의 영향을 받아 예정구령설(豫定救靈說)을 강조하며, 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인정하고, 교황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의 이른바 성직매매(聖職賣買)등 세속화를 강력히 비판했다.

후스는 교황 무오설을 부정(不定)하고, 고해성사와 성직자의 독신을 거부하고, 면죄부(免罪符) 파기를 주장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의왕중앙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