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적대적의 관계에 있던 남북한의 정상들이 2번에 걸쳐 만났다. 그리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남북한 민족의 화해를 내용으로 한 ‘판문점선언’에 서명했다. 또한 70년 동안 적대적의 관계에 있는 미국과 북한의 정상들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판문점선언’을 빠른 시일 내 이행하고, 한반도의 전쟁종식과 평화를 실현한다는 것에 대해서 합의했다. 세계의 눈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 쏠렸다.

오늘 세계의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냉전체제를 종식하는 역사적이며, 세계사적인 일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곳이 딱 2곳이 있다. 하나는 영미의 근본주적 지배이데올로기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보수적인 한국교회이다. 또 하나는 보수적인 정당이다. 국민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간절히 원하며, 남북한 민족의 화해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단체는 세계의 흐름, 남북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행보를 대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은 분명 반평화적이며, 반민족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관념과 집단의식의 구조악에서 벌어나 예수님의 샬롬을 외치며, 평화를 향한 행진에 참여했어야 함에도, 힘에 의한 평화(팍스)를 외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SNS를 통해 국민들의 정서에 반하는 글들을 퍼 나르기에 바쁘다. 누가 무엇이라고 하던 기독교의 정신에 반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한민족의 역사와 ,정치, 그리고 문화에서 이탈된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사실 한국교회는 영미선교사들이 가져다가 준 제국주의적 선교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 기독교가 바로 서양의 문화가 되었으며,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터부시하고, 이를 샤머니즘으로 생각해 왔다. 그리고 영미의 문화와 종교를 최고인양 착각 속에 살아 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교인들에게 교육해 왔다. 한마디로 성경을 한국적 상황에서 재해석하고, 변화를 주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한국교회는 국민들의 변화하는 의식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망해가는 이씨조선 말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펼친 선교사들은 한글보급을 통해 피압박 민족의 해방과 민족의식을 이들에게 심어주는데 크게 공한 것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미선교사들은 일본의 식민지세력과 야합, 한민족의 의식화를 철저하게 막았다. 그럼에도 한민족에게는 한민족의 해방과 나라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살아남아 있었다. 그것은 3.1만세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으로 표출되었다. 또한 영미 선교사들은 교파주의를 그대로 이식시켜,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했다. 한국교회가 1925년 이 땅의 지식인과 젊은이들에게 파고들어온 공산주의에 적극 대응만 했더라면,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는 없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관념과 집단의식의 구조 악에 사로잡혀, 한민족과 세계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를 못했다. 그렇다보니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보수정당의 최대 지원자였으며, 이들의 권력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렸다.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오방과 악령에 빠진 박근혜 정부를 감싸고 돈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들은 관념과 집단의식에 사로잡힌 구조악과 싸우는데 한국교회 만큼은, 오방과 악령의 집단을 적극 후원하며, 비호하기에 바빴다.

반 평화적이며, 반민족적인 집단에 대해 국민들은 심판했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분열과 갈등을 일삼아 온 한국교회, 분열에 익숙해진 한국교회가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평화, 그리고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어떻게 봉사 할 것인지(?) 국민들은 묻고 있다. 서양의 문화와 종교를 한국적 상황에서 재해석하지 못한 한국교회의 모습에서, 남북한의 분열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계속해서 한국교회가 변화하는 국민의식과 역사를 외면하는 한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으며, 교회의 희망을 담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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