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착하게 살던 욥이 까닭 없이 비통한 일을 겪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제 마음대로 욥을 추궁하고, 욥의 신앙을 비판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욥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지 못한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욥을 ‘하나님 신앙의 승리’라는 차원에서 보아왔다. 이유 없이 당하는 고난과 재난 가운데서도 하나님 신앙을 잃지 않고 승리했기 때문에, 욥이야말로 신앙으로 승리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욥기는 당시 유대인 사회의 도덕관에 일대 도전을 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대인들은 인간에게 닥치는 모든 고난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인과응보사상이다. 하지만 욥기를 보면 그 같은 논리가 도전을 받고 있다. 욥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에게 어떤 도덕적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으로서 그 이유를 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안에 있는 피조물이지,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天地不仁)’는 말이 있다. 천지 만물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 사람을 가려가며 이 사람에게는 비를 내리고, 저 사람에게는 볕을 내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천지’란 하늘과 땅의 공간개념이라기보다 세상 이치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심이라”(마5:45)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람이 제 마음대로 선악을 구분하여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욥의 친구들이 따로 없지 싶다. WCC부산대회 유치 반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기총을 비롯한 보수교회들은 결사적으로 WCC부산대회 유치를 반대하는데 그 이유라는 게 WCC가 용공이고, 동성애를 확산시키고,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고, 자유주의신학을 신봉하는 집단 이라며 마치 전쟁이라도 벌일 태세이다. 저들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오만과 무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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