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지난 5일은 환경의 날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런데 오늘 세계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사람 사는 세상은 자연환경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환경도 중요하지만 전쟁과 기아, 갈등으로부터의 해방되는 평화의 환경도 중요하다. 너와 내가 함께 사는 환경, 홀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사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세계는 그렇지 못하다. 기아와 전쟁을 피해서 지중해를 건너다가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 난민들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사는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 수 있다. 이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그리운 조국과 고향을 떠났다. 지금 세계는 인류 20번을 전멸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세계 식량의 50%이상을 부자국가들이 소비한다. 부자나라의 국민 한사람이 이디오피아 한사람이 소비하는 식량의 40배를 소비한다.

세계는 지금 핵무기에 노출되어 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순식간에 10만명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오늘 강대국들이 소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한번에 1억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가공할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인류는 핵무기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세계는 좋은 환경 속에서 살기 위해 평화를 노래하고, 이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외친다.

강대국인 미국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는 무기경쟁을 벌이며, 약소국가들을 위협한다. 이 무기를 사들이는 국가는 제3세계 국가이고, 여기에서 이득을 챙기는 이들은 무기상이며, 이들로부터 혜택을 받은 1세계 국가의 지도자들이다. 이제 세계는 비이성적인 한 사람의 말 한마디면, 책상 위의 단추를 누르면, 인류는 전멸한다. 그래서 인류는 살맛나는 세상을 위래 반전, 반핵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인류가 죽음에로 네달리고 있는데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회는 예수님의 ‘삶의 현장’, ‘역사의 현장’과 유리되어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예수님의 샬롬을 외치고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남북한의 적대적인 관계에 있어서 교회는 강대국들의 손을 들어주며, 팍스에 의한 평화를 외치고 있다는데 국민들은 안타까워한다. 한마디로 참담하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미천하고, 떠돌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예수님은 이들을 사랑했다. 이들은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따라 다녔다. 그렇다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홀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 한다는 가치를 찾아야 한다. 하늘은 혼자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도 혼자갈 수 없다. 너와 내가 함께 가야 한다. 남한 민족만 갈수 있는 곳이 아니다. 북한 민족도 함께 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너를 살리기 위해,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한민족을 살리기 위해, 전쟁과 기아의 공포에 있는 인류를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희생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선교의 참뜻이며, 한국교회가 실천해야 할 선교적 과제이다. 선교는 예수님을 알게하고, 추상적으로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죽음 가운데서 해매는 이웃을 살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운동은 기아와 전쟁, 그리고 갈등을 넘어 살맛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직시하고, 이것들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힌 그것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균열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며,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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