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왕으로 정평 난 인물이 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 왕으로 22년간 통치한 아합이다. 그는 지은 죄가 막중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합의 심판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다. 아직도 아합의 아들들과 이세벨이 악행을 일삼고 있었다. 그 사이 아합에 맞서 목숨 걸고 투쟁했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그의 제자 엘리사가 이세벨과 대결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때가 되어 엘리사는 야훼 하나님께로부터 이세벨에게 최후 심판을 가하도록 소명을 받는다. 엘리사는 문하의 생도에게 전선에 나가 있는 장수 예후를 찾아가서 전격적으로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라고 한다.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새로운 왕이 된 예후는 엘리사의 분부대로 지체하지 않고 아합의 잔당을 척결하기 시작한다. 아합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요람은 다급하게 도망치다 예후의 화살에 맞아 죽고, 이세벨은 ‘감히 누가 내게 도전하느냐’며 위엄을 갖추고 궁궐 창문으로 입성한 예후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런 이세벨을 내시들이 들어서 성 아래로 던져버린다. 설화자는 이 참혹한 장면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들이 그 여자를 아래로 내던지니 피가 벽과 말에게까지 튀었다. 예후가 탄 말이 그 여자의 주검을 밟고 지나갔다.”(왕하 9:32-33) 이세벨의 남편 아합의 주검은 창기들이 목욕하는 데서 씻고, 개들이 그 피를 핥았는데, 이세벨의 주검은 아예 개들이 먹은 것이다. 성경은 이 끔직한 장면을 순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참혹한 일은 일어났다. 이왕 일어난 일이라면 용기를 가지고 들여다보고, 후대에 전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소명이다.

금년으로 5·18광주 학살이 일어 난지 38년째이다. 그동안 권력의 비호로 가려졌던 잔혹했던 진상들이 이제야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도록 부름 받은 일부 군인들이 국권을 찬탈할 목적으로 시민을 빨갱이로 몰고, 시민을 겨냥해서 발포를 하고, 적을 섬멸하듯 헬기 사격까지 가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부녀자를 집단으로 폭행까지 했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록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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