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일을 맡기기 위한 일군을 찾고 계시지만 일군이 별로 없습니다. 마치 집 주인이 손님대접을 위해 그릇들을 찾고 있는데 준비된 그릇이 적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깨끗하고 준비된 그릇을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35절에서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셨으며 누가복음 10장 2절에서는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께서는 많은 일군을 필요로 하고 계십니다. ‘큰집에는 금과 은이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딤후2:20)

각 가정에는 귀한 그릇도 있고 천하게 쓰는 그릇도 있습니다. 어떤 그릇은 음식물 쓰레기만 담기도하고 어떤 그릇은 손님이 오실 때만 내놓으며, 어떤 그릇은 평상시 식구들끼리 있을 때 사용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도 그릇들이 다양합니다.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집에 있는 그릇이 모두 말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면 그릇을 쓸 때마다 그릇들이 여러 말을 할 것입니다. 어떤 그릇은 왜 자기는 몇 년 동안 찬장에만 있어야 하는지 불평할 것이며 또 어떤 그릇은 왜 매일 사용하는지 불평할 것입니다. 김치 담아놓은 그릇은 날마다 신 것만 담는다고 불평할 것이며 밥을 담는 그릇은 날마다 뜨거운 것만 담는다고 불평할 것입니다. 아마도 자기 역할에 만족하는 그릇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또 그릇끼리 서로 자랑할지도 모릅니다. 자신은 특별한 손님이 왔을 때만 나가는 그릇이라고 자랑하며 또 어떤 그릇은 천하게 쓰는 그릇을 무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한 집에는 다양한 그릇이 있는 것처럼 성도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일이나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사람들을 다양하게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그릇은 전도에 쓰임 받고, 어떤 그릇은 봉사에 쓰임 받으며, 또 어떤 그릇은 가르치는 일에 쓰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이 쓸 수 있게 그릇이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식사를 해야 하는데 부엌 에 있는 그릇이 모두 더러운 그릇이라면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아마 마음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지금 세상에 아주 할 일이 많아서 일군을 찾고 계시는데 준비된 일군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도 그것입니다. 준비된 그릇이 있으면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것은 물로 씻어서 깨끗한 상태일 때를 말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신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깨끗한 상태를 준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지금 세상에서는 그러한 사람을 찾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쓰기 원하십니다. 일군을 필요로 하십니다. 청결한 양심을 갖고 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예장 합동 해외총회 부총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