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따옴표” 언론보도라는 문제는 많이 회자되어 왔다. 이는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따와서 자기언어로 보도하는 형태를 말한다. 이는 그 보도태도가 여론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크다고들 한다. 이는 언론인(journalist)들의 ‘미필적 고의’(未畢的 故意) 에 의한 것이라면 오보차원이 아니라 이는 엄연한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언론을 제 3의 권력이라고 말한다. 이는 그 영향력이 국민의 정의와 인권까지도 왜곡 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정보기관과 수사기관들의 첨단화를 추구한다. 이에 언론 역시 그와 같은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들과 버금가는 정보력을 동원한다. 따라서 언론이 언론으로써의 순기능을 상실할 때 국민들(국가)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뜨릴 수 있고, 한 사람의 인격적 살인도 얼마든지 자행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에 대항하여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이미 언론의 정정보도 내지 사과 등을 받아 낸다 해도 이미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는 사망(死亡)에 이르는 나락으로 덜어져 있음으로 그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의 오보는 그 심각성이 매우 크기에 우려를 자아낸다. 나아가 ‘미필적 고의’(未畢的 故意)에 의한 범죄행위(犯罪行爲)로 밝혀질 경우에는 민 형사적 처벌 까지도 받을 수 있다. 이는 언론자유를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론이 정의롭고 정직하며 사실적 보도를 하게함으로 언론이 신뢰받고 그 정의를 인정받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의 설교(법문 등)나 간증 등의 “따옴표”에는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 석가모니의 가르침 등을 을 “따옴표”로 하는 것이야 말로 왜곡(歪曲)이 아닐까? 언론 보도를 “따옴표”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잘못된 언론과 같은 형태의 “따옴표” 설교(법문 등)로 사람들의 영혼은 물론 가치관, 정체성 등을 바꾸어 놓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닐 수 없다. 문제는 언론인(journalist)들과 같은 실력(언론고시라 할 정도의 학식과 격륜, 전문성 등)을 능가하는 사람 등, 보편성을 뛰어넘는 실력을 갖춘 종교 지도자들이 더 많은 “따옴표” 설교(법문 등)를 한다는데 심각성을 더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 곧 사회적 경력, 전문성, 학위, 학력(외국어능력) 등을 내세워 회중들로 하여금 그 “따옴표”에 대하여 절대적인 신뢰를 갖게 만든다. 그들이 “따옴표”임을 잘 알면서도 자신들이 갖춘 것을 이용하여 더욱 신뢰를 갖게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물론 그리하지 아니하는 지도자들이 더욱 많다. 또한 그들에게 이르지 못하는 경우의 지도자들도 있다. 이해의 한계에 부족함을 느끼지만 끊임없이 공부하며 설교(법문 등)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등 선한목적을 앞세운다지만, 알면서도 “따옴표 설교(법문 등)” 등을 행하는 것이야 말로 미필적 고의(未畢的 故意)이다. 이는 자기들이 섬기는 신을 모독하는 행위며, 범죄(犯罪)를 저지르는 것이며, 신자들을 혼잡[混雜 (고후2:17)]에 빠지게 하는 것이야 말로, 아주 비양심적인 사이비 이단 등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위이다. 따라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들이 미필적 고의(未畢的 故意)에 의한 따옴표 설교(법문 등)를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알면서도 그리 하는 자들이야 말로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 아닐까?(디모데전서 4장 1절-2절 참조) 물론 잘 모를 수는 있다. 모르기에 아는 범주 내에서 증거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따옴표” 설교(법문 등)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 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