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성서는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는 교훈을 주고 있다. 성서의 처음은 생명의 탄생과 하비루들의 해방이야기로 시작된다. 하나님은 동생 아벨을 살인한 카인에게 표지를 달아주면서, 그를 죽이는 자는 일곱배의 벌을 내리겠다고 선언한다. 카인은 살인자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표지를 달아주었다. 비록 범죄를 했어도, 그의 인권만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예수님은 천박하고, 보잘 것 없고, 거덜 난 사람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모든 삶을 받치셨다.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었으며, 이들은 예수님이 좋아 무리를 지어 따라다녔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이들이 있는 곳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예수님의 인권운동의 현장은 성서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누가복음 4장에 나타난 가난한 사람,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들의 해방을 선언하셨다.

예수님은 항상 인권을 유린당한 여자들, 병든자, 문둥병자, 창기 이른바 죄인들과 있었다. 힘없는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친구였다. 이들은 바리새파 체제 속에서, 그 법대로 살수 없어 예루살렘에서 벗어나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기 때문에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킬 수 없었다. 때문에 이들은 죄인들이다. 예수님은 기존의 도덕이나, 종교적 판단과는 아무상관 없이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섰다.

그것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 한 푼의 돈, 잃은 아들 등의 비유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은 죄인들을 정죄하는 자들과 맞섰다.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화 있을 진지, 너희 바리새인들아!”라는 책망은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죄지은 죄인들에게가 아니라, 바로 이들을 정죄하는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을 향해 있었다. 또 예수님은 병든자를 고쳐주시고, 본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인간의 기본권을 회복시켜 준 것이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문둥병자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빨리 제사장에게 가서 내가 병이 나았다는 증명서를 받고, 본래의 인간으로 회복해서 네집으로 돌아가ㄹ파”고 말씀하셨다. 당시 문둥병자는 공존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하여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했다. 당시 문둥병자가 인간사회로 다시 돌아가려면, 병이 나았다는 증명서를 제사장으로부터 확인증을 받아야 했다. 여기에서 공존권을 회복하게 하는 예수님의 인권운동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이들과 함께 식사공동체를 만들었다는 것은, 바로 계급적인 장벽을 혁파했다는 구체적인 행위이다. 또 예수님은 이들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제도가 이들을 무거운 짐인 것을 알았다. 때문에 이것이 무효임을 선언한 것이다. 안식일법과 정결법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저들을 억누르는 구조악(사탄)과 싸웠다. 예수님은 사탄의 세력이 깨어지는 날, 새나라가 온다고 선언했다.

에수님은 주린 자, 목마른 자, 집없는 떠돌이, 헐벗은 자, 병든자, 감옥에 갇힌 자와 자신을 일치시켰다.(마태복음 23장 40절) 예수님은 이들이 바로 새 시대의 주인임을 선언하셨다. 실제로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것이다”고 선포하셨다. 산상설교에서 “기뻐하며 즐거운 춤을 추라”고 하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살맛나는 세상이 아닌가. 천민이 춤추는 세상이 예수님에 의해서 도래한 것이다.

이렇게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실현한 예수님은 당시 집권자들과 로마 제국주의 세력의 야합에 의해서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셨다. 이렇게 죽임을 당한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곁에 계시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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