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선 규 목사

어려서 들은 말 중에 공수래, 공수 거(公水 來 空手 去)라는 말이 기억난다.

나는 손 주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이 말이 더욱 이말 이 실감이 난다 .태어날 때는 빈손으로 나오지만 점차 손 에 무엇인가 쥐려고 하는 욕망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돌아 갈 때가 있는 법 그 순간에는 옷도 신발도 심지어집조차도 필요 없게 되어 진다. 또한 소탐대실(少貪 大失) 이라는 말도 있다.

종종 어른들이 바둑 두는 것을 보게 된다. 상대편 바둑알 몇 개를 따먹으려고 욕심내다가 도리어 자기 쪽의 바둑알을 더 많이 잃게 되었을 때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이처럼 눈앞의 것만을 탐하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된다. 그 뿐인가? 사리사욕(私利私慾)이라는 단어도 있다. 흥부전에서 보면 형 놀부는 욕심이 너무 많다 그래서 자기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고 동생에게는 쌀 한 톨 주는 것을 아까와 한다.

국민의 공복이어야 할 사람들이 이 사리사욕에 눈이 먼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어디 사회 뿐 이겠는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자기 눈앞의 큰 것을 탐하다가 더 큰 것을 잃어 버리는 요즘 교계의 모습을 보는듯하여 마음이 씁쓸하다

미국의 한 방송인이 쓴 글에서 본 일화이다. 한번은 에스키모 인들이 추운 겨울철 늑대를 잡는 이야기를 들려 줬는데 그것은 몸서리 쳐지는 인간의 욕망과 그 가공할 파괴력을 적절하게 묘사한 것으로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고 가슴에 남는다.

추운 겨울 에스키모는 날이 선 칼에 짐승의 피를 골고루 바 른 후 얼어붙기를 기다린다. 그 위에다시 짐승의 피를 바르기를 반복한다. 칼날이 완전히 얼어붙은 피로 덮일 때까지 그 과정을 반복 하는데 에스키모는 그 칼을 적당한 장소를 찾아 칼날이 위를 향하도록 눈 위에 고정시킨다. 달빛 휘영청 밝게 얼어붙은 북극의 백야(白夜) 배가 출출해진 늑대는 그의 예리한 후각을 총동원 피 냄새를 좇아 먹이를 찾아 나선다. 먹이를 발견한 늑대 놈은 그 싱그러운 맛에 도취해 점점 더 빨리 미친 듯이 핥기를 계속 한다.

북극의 얼어붙은 달 빛 아래서 더욱더 광적으로 칼날을 핥아 댄다. 자신의 뜨거운 피가 칼날에 낭자하게 묻어나는 것도 모르고 죽을 때까지 그 죽음의 동작을 중단하지 못한다.

이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인간의 최후를 보게 된다.

선교 200년을 보내기 까지 한국교회는 그 열심히 전도하여 세계적인 교회들을 이룩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가 드린다. 그동안 크고 작은 국난을 극복하고 가난 속에서도 괄목 할 만한 선교 대국을 이룬 것도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외화내빈(外華內賓) 이라는 말과 같이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대형교회 이면에는 희생된 작은 교회들이 있다는 기막힌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 놀부의 마음처럼 흥부에게 나누어 주기를 꺼려하고 욕심 부리다가 한국 교회 전체의 이미지는 상실 하는 소탐대실이 더 이상은 멈추어 지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지혜로웠던 솔로몬의 말이 생각난다. “공정하고 의로운 왕은 나라를 안정하게 하지만 뇌물을 강요하는 왕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 솔로몬의 지혜서 29:4절의 말씀으로 외경에 있는 말이지만 귀에 새겨지는 말씀이다. 인간 욕망의 한계점은 어디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한대라는 것이다.그러나 끝, 없이 치닫는 욕망이라는 감정을 제어 할 수 있는 브레이크 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함부로 날 뛰거나 혼자 우쭐대는 자는 아니다. 장내가 떠나갈 듯한 박수 속에 스타가 되고 싶다.전 세집은 이제 그만 내 집도 이 나이에는 좀 넓은 평수에다 정원도갗추어 지면 더 좋고 차고와 자가용도 좀 고급이면 안성, 맞춤이고 그 뿐인가? 손 주라도 미국에 보내 학위라도 따게 해야 하고 이 끊일 줄 모르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마셔도 먀셔도 가시지 않는 목마름이여! 영원한 갈증이여! 그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세상이 주는 물은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라. 이런 물이 있는 줄을 알기나 했던가!

대림 다문화 센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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