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목사

하나님이 모세에게 밝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는 수수께끼처럼 들린다. “나는 곧 나”(새번역, 공동번역), “나는 있는 나”(성경) 등도 신의 이름으로 수긍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한편 <70인역>의 “나는 존재자”, NRSV의 “I AM WHO I AM” 등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껏 많은 번역과 연구자들이 해석을 내놓고 있으나 통일된 의견을 찾기 어렵다. 문맥상 하나님 이름으로 추정되지만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번역은 관계사 중심으로 앞뒤에 위치한 ‘에흐웨’를 명사적 구문으로 보고 두 번의 동사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한글로 옮기면 “나는 ‘나는-이다’ 이다”가 된다. ‘나는-이다’가 중심에 있고 동시에 바깥에서 동일한 구문이 감싸는 형국이다. 문법적으로는 ‘에흐웨’가 두 번 나오지만 관계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세 차례 언급된 것과 같다. 리꾀르는 야구 용어를 빌어 3루타와 같은 효과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14절에 ‘에흐웨’가 세 번 언급되었다. 따라서 이 구문을 하나님 이름 계시라기보다 ‘본질’, 또는 ‘원형질’로 보는 것이다. <70인역>의 번역도 이를 반증한다. 이와 같은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어본 이는 포로기 예언자 이사야다.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사 41:4). ‘나는-이다’의 원형을 최대한 살려 명사적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위의 명사적 구문은 신약에도 그대로 전승되었다. <요한복음>에는 ‘나는-이다’ 구문이 빈번하게 언급된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요 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양의 문이라(10:7), 나는 선한 목자라(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11:25), 나는 참 포도나무라(15:1,5).” 같은 맥락에서 밧모섬의 요한의 통찰 또한 중요하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계 1:8). 전자가 ‘에흐웨’ 구문을 선언적으로 이끌어냈다면, 후자는 히브리 구문에 두 번 중첩된 ‘에흐웨’를 삼중으로 살려낸 것이다. 출애굽기의 에흐웨 구문은 일인칭 ‘나’(I)에서 삼인칭 ‘그’(He)로 다시 일인칭 ‘나’(I)로 순환되는 구조에 비밀이 담겨있다. 이와 같은 순환구조에서 바룩은 ‘영원자’ 하나님을 찾아 읽는다(Baruch 4:10,14,20,22,24,35, 5:2).

한때 대한적십자에서 ‘사랑은 동사다’라는 구호를 앞세워 나눔과 실천을 유도한 적 있다. 사랑을 인지적 차원의 명사적 개념이 아니라 움직이며 활동하는 동사적 의미를 살려낸 것이다. 하나님 자기 계시 ‘에흐웨 아셰르 에흐웨’는 동사를 극대화한 문장이다. 즉 이스라엘이 고통 받고 있을 때 건져내시고, 바알과 이방인 신앙에 경도되었을 때 호되게 꾸짖으시고, 포로와 절망 가운데 있을 때 새 희망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구원사가 히브리 동사 ‘에흐웨’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러므로 ‘나는-나다’라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하여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고백으로 응답해야 한다(요일 4:10).

하나님 이름의 명사적 의미가 선언적이고 존재적이라면, 동사적 의미는 실천적이며 관계적이다. 출애굽기 3장에서 야웨는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어 가나안으로 올라가게 하는 구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결국 곧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 2:9)이 되었다. 하나님은 동사다. 하나님은 스스로 ‘동사’로 계시하였고 구원 역사에서 역동적인 활동을 동사로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을 명사적 존재적 관점에서 풀어내는 것은 최초 동사에 포함된 실천적 의미와 관계적 상호성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난 2천년 동안 동사 하나님, ‘에흐웨’가 서양 기독교와 문화 전통에서 명사 ‘존재’로 인식되어왔기 때문에 동사의 역동성과 관계적 의미가 한켠에 묻힌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이름을 명사적 의미로 가두지 말고 본래적인 관계성과 실천적인 동사의 의미를 되살려야 한다. 사랑이 동사라면 하나님 역시 그의 백성과 피조 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시는 동사로 볼 수 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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