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출애굽 백성들을 줄잡아 240여만으로 본다면 그 많은 무리가 가나안에 입주해서 각자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기, 협박, 공갈, 납치, 폭행, 겁탈, 도둑질, 배교, 살인 등 온갖 범죄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범죄들이 일어났을 때, 저들은 범죄자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했을까? 민수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어쩌다 살인이라는 끔찍한 죄를 범한 이들이 무차별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도피성’을 만들어 정식 재판을 받을 때까지 보호하도록 것이다(민 35:9-15; 신 19:1-13; 수 20:1-9). 물론 도피성은 살인자만을 위한 것이 아닌, “너희를 위하여”(민 35:11) 라는 선행구가 말해주는 것처럼 모든 백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기도 의도치 않게 살인자가 되었을 때 혹은 살인의 누명을 썼을 때 직접 보복을 당하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닌 레위인이 거주하는 여섯 곳을 지정하여 원주민-이주민-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도피성에 피신한 이들을 보호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죽음의 땅에서 살길을 찾아 제주도까지 밀려온 5백여 명의 예멘 난민으로 인해 지금 대한민국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환대는 못할망정 가짜 난민이라느니,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관계가 있다느니, 혈세낭비라느니 하는 근거 없는 소문을 유포시켜 살 길을 찾아 우리 땅에 온 난민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하기에 하는 말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무려 60여만 이상의 난민수용반대 청원이 올라와 있다고 하니(2018.7.3.현재) 이보다 더 난감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살인자라 할지라도 도피성을 지정해 저들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부과했던 출애굽 직후의 백성만도 못한 일을 자칭 문명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배은망덕도 없다.

근세 들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난민을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조선이고 대한민국이다. 오늘의 중국동포, 재일동포, 사할린 동포, 구소련 지역에 산재한 동포, 남미 각 지역의 동포 등 대부분이 대한제국의 멸망으로 발생한 난민 출신들이다. 6·25한국전쟁 통에 발생한 600여만 명에 달하는 피난민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부모 잃은 고아 20여만 명을 맡아 기를 이가 없어 해외로 입양보내기도 했다. 지금도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잠재적인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일종의 일자리 난민이다. 사정이 이러한대도 난민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문재인 대통령까지 작금의 난민 혐오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런 일이다. 대한민국이 모든 난민을 수용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난민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일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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