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목사

하나님 이름 야웨는 동사 ‘하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특히 하야 동사가 관계사 아셰르와 함께 앞뒤로 두 차례 언급된 위 본문이 그 원형일 것으로 추정한다. 일인칭 미완료 에흐웨는 ‘나는-이다’ 쯤으로 번역된다. 한국어 ‘이다,’ ‘있다,’ ‘잇다’의 뿌리는 동일하다. 하나님 이름과 관련하여 동사 ‘하야’에 주목하는 것은 여기에 ‘이다-있다-잇다’라는 세 가지 의미가 중첩되어 그 이름의 비밀과 신비를 풀어낼 단서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첫째로 에흐웨는 ‘이다’를 뜻한다. 히브리 문법에는 영어 be에 해당하는 연결사 없는 문장이 있다. 이른 바 명사 문장이다. 보통 문장은 주어 동사 보어 목적어 등처럼 형식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동사는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히브리 문장에는 동사가 없는 경우가 있다. 물론 다른 언어로 번역하려면 동사를 꼭 살려내야 한다. 예컨대 ‘아니 요셉’(I Joseph)은 동사가 없이도 소통이 가능하지만 영어로 번역할 때는 I am Joseph처럼 계사(copula)를 채워야 문장이 완성된다.

히브리어는 위와 같이 명사문장인 경우와 ‘나는 요셉이다’처럼 동사가 포함된 경우가 있다. 후자에 필요한 동사가 곧 ‘하야’다. 여기서 하야는 주어와 보어 사이를 연결하는 계사이며 주어의 정체성을 밝힌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에흐웨는 ‘하야’의 일인칭 미완료로서 ‘나는-이다’가 된다. 곧 하나님의 자존적 선언으로 존재 이전의 본질, ‘스스로 있는 나,’ 곧 자존자(自存者)로 소개된다. 그러니 우리에게 하나님은 숨어계시는 분이며(사 45:15) 게다가 함부로 발설할 수도 없는(ineffable) 분이시다(출 3:6; 렘 1:6). 이다!

둘째는 현존하다는 의미인 ‘있다’로 표현된다. 에흐웨는 거의 모든 번역성서가 공유하듯 ‘스스로 있는 자’에서 확인되고 일찍이 <70인역>의 ‘호 온’으로 이미 분명해진다. 이 구문에서 해석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올브라이트의 ‘나는 존재케 하는 자’와 다른 하나는 유대교의 ‘나는 항상 동일한 나’로서 ‘영원한 분’이다. 전자가 창조자 하나님을 강조하는 설명이라면 후자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도 똑같이 존재하신 분을 가리킨다. 따라서 ‘나’(I)와 ‘그’(WHO-I-AM) 사이에서 주어와 보어는 동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을 간파한 이사야는 ‘나 야웨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고 선언한 바 있다(사 41:4). 곧 나는 항상 스스로 존재하듯 그렇게 현존한다. 그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늘 같은 성품을 유지한다는 의미로 ‘계신다.’ 있다!

셋째로 에흐웨에는 ‘잇다’가 들어 있다. 문법적으로 ‘일어나다’로 설명하지만 ‘잇다’를 살려내지는 못한다. 에흐웨 아셰르 에흐웨 구문에서 앞의 에흐웨는 ‘나’(I)이지만 뒤의 것은 ‘그’(WHO-I-AM)가 되기 때문에 그 둘 사이를 잇는 고리가 필요하다. 영어 “I AM WHO I AM”에는 일인칭(I-AM)에서 삼인칭(WHO-I-AM)으로, 그리고 문장 전체는 다시 일인칭 ‘나는-이다’로 마무리 짓는다. 나(I), 그(WHO), 그리고 나(I)의 순환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여기서 ‘하야’는 주어와 술어 사이에서 본래적 동사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관계사 중심으로 형성된 두 구문을 연결하는 계사가 되어 ‘잇고’ 있다. 이사야는 ‘나’와 ‘그’를 동일한 분으로 판단한다(사 41:4; 48:12; cf. 막 14:62; 요 18:5,6,8). 둘 사이를 연결하는 행위가 곧 구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잇다!

‘이다’는 선언적, 체험적이고, ‘있다’는 존재적, 개념적이며, ‘잇다’는 관계적, 구원적이다. 하나님은 ‘나는-이다’에 매이지 않고 ‘나는-있다’와 ‘나는-잇다’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이며’ 피조 세상과 자신을 ‘잇는’ 연결을 통하여 그분의 현존 곧 ‘있다’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한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 구문, ‘나는-나다’에서 이다-있다-잇다의 세 본성은 존재 방식을 통하여 역할을 규명하려는 것일 뿐 실제로 구분되거나 나뉘지 않는다. 마치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듯이(고전 12:4-5). 그러니 ‘이다-있다-잇다’ 중 하나에 집중하여 다른 특성을 배제한다면 일정 부분만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여 결국 하나님의 본질을 왜곡하게 된다. 하나님 이름의 신비가 여기에 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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