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예수님의 설교는 매우 감동적이어서 듣는 이들이 하나같이 열심히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실제로 복음서에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예수께 나아온 장면을 자주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참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설교하실 때 사람들은 도무지 흥미도 없고, 알아들을 수 없다고 수군거렸다. 그리고 그런 설교가 빈번해지고 길어지자 그 많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예수께서는 그게 마음에 걸리셨던지 남은 제자들에게 “너희까지도 나를 떠나겠느냐”(요 6:66)고 물으시기도 했다.

집회 때마다 수백 수천 명씩 몰려들게 하는 설교자들이 있다. 도대체 무슨 능력으로 그럴까? 그들이 정말 참 생명의 설교를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으는 설교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분명 예수님보다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죽은 생명을 살리는 설교를 하신 분이지,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으기 위해 설교하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를 설교하신 분이지 불의한 자들이 마음 편하도록 위로의 설교를 하신 분이 아니다. 우리가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생명을 살리는 말씀은 듣는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 ‘너희는 지금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다그치기 때문이다. 미련이 너무도 커서 소금기둥이 돼버린 롯의 아내처럼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마음을 돌이키라는 것이 생명의 말씀이기에, 그만큼 듣는 이에게 마음의 부담을 갖게 한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렇다고 설교를 열심히 듣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한번은 불순종하던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달라며 하는 말. “그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렘 42:6)고 한다. 듣기에 좋던 싫던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니 얼마나 기특한가! 그런데 사실은 정말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레미야를 이용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 말이다. 그러니 설교를 잘 듣는 것도 좋지만 그것 못지않게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좋음을 잊지 말 일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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