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울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근심 걱정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 문 현 미 시인
시인의 상상의 날개는 어디까지 날 수 있을까. 이 시를 읽으며 떠 오른 생각이다. 무한한 상상의 힘으로 시인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래서 상상력이 풍부한 시인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김승희 시인은 시력 40여년 동안 부단히 새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당대 어떤 시류에도 편승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무소속의 기쁨을 시로써 구가하는 시인이다.

이 시는 독특한 제목으로 인하여 관심을 환기시킨다. 이 세상 어디에도 그래도라는 섬은 없다. 지도에 없는 섬을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이다. 얼마나 기발한 발상인가. 그 섬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시의 첫 연에서 ‘그래도’는 ‘가장 낮은 곳에/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편안한 곳,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이 머무는 아름다운 섬이다. 힘들고 지쳐서 더는 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서로 위로하고 웃으며 사는 사람들이 사는 섬이 ‘그래도’이다. 시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시어 ‘그래도’로 인하여 독자들의 가슴에 ‘그래도’라는 섬이 둥지를 튼다.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어의 힘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많은 언어학자들이 언어의 힘에 대하여 갈파를 했다. 그 중에서 노엄 촘스키나 에드워드 사피어 같은 석학들은 “언어가 의식과 사고를 지배한다”고 한다. 좋은 언어를 반복해서 사용하면 긍정적 사고를 하게 되고, 나쁜 언어를 자주 사용하다 보면 우울해지고 부정적인 사고에 젖게 된다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시에서 ‘그래도라는 섬에서/그래도 부둥켜안고/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빛의 뗏목’에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빛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 답은 바로 다음 행에서 찾을 수 있다. ‘근심 걱정 다 내려 놓은 평화로운’ 곳, 즉 ‘그래도’라는 섬이다.

발상의 전환은 4차산업혁명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우리는 시인의 새로운 발상으로 지구에 없는 좋은 섬 하나를 만나는 기쁨을 누린다. 접속부사 그래도가 탁월한 상상력으로 인하여 섬으로 탄생하는 비밀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시가 속도전의 디지털 세상에서 느리게, 사람답게 사는 아날로그 세상으로 이끈다. 언어의 연금술로 이루어진 좋은 시의 힘으로 그래도 거친 강을 넉넉히 건너갈 수 있겠다.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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