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4살 된 아이가 어린이집 승합차에 갇혀 죽임을 당했다. 지난 17일 이 아이는 승합차에 방치됐다가 7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모든 국민은 분노하지만, 좀처럼 나아지는 것은 없다.

 
이 사건은 어린이집의 교사, 인솔교사, 어린이집 원장, 차량기사가 조금만 주위를 기울였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다. 이 아이는 오후 집으로 돌아가 엄마와 아빠 앞에서 재롱을 부리며, 웃음을 가족들에게 주어야 할 시간에 주검으로 부모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 아이는 차에서 내리지 못했고, 기사 역시 아이들이 다 내렸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교사 역시 아이의 등원을 확인하지 않았다. 7시간이 지나서야 등원하지 않은 것을 알고 부모에게 연락했다.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사건은 어른들의 부주의로 인해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데 경악한다. 아이를 살해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관련기관은 아이가 등원했는지를 교사는 확인하고, 기사는 아이들이 다 내렸는지 확인해야 하는 등의 지침을 내려 보내지만, 이 지침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모두가 긴장하지 않고, 아이를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돈벌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찌됐든 원장이나, 차량기사, 교사, 인솔 교사 모두가 어린이집의 메뉴얼대로 따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차량기사는 아이들이 다 내렸는지 확인했어야 했고, 교사는 아이가 보이지 않으면, 부모에게 연락을 해 등원 여부를 확인했어야 했다. 아이가 7시간 동안 찜통에 갇혀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쳤다고 생각해 보라. 4살 된 아이는 창문을 깰 힘도 없고, 닫힌 문 속의 밀폐된 공간에서의 아이의 아우성 소리는 허공을 치는 꼴이 되었다. 참으로 안타깝다.
 
얼마 전 할아버지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 간다고 나섰던 아이가 죽임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어린이집의 아이가 죽임을 당했다는데 국민들은 안타까워하면서 분노한다. 왜 우리의 아이들은 어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일까.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하면, 이 어린이집 원장은 물론, 교사도, 운전기사도 원망스럽다. 이들은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카인’이 아닌가, 차안에 갇혀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아이의 목소리가 우리 귓전에 울린다.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카인은 무엇이라고 변명할까. 아침 어린이집에 가겠다며, 엄마의 배웅을 받고 어린이집 차량에 올라탄 아이는 부모와 우리의 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충격을 받은 엄마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사무친다. 우리의 아이를 살려내라는 하늘을 향한 절규가 아닌가. 이 모습은 지켜보는 이웃의 마음도, 이 엄마와 다르지 않다. 모두가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마음속으로 함께 아우성쳐야만 했다. 이웃주민들의 말대로 기가 막힌다.
 
경찰은 어린이집 교사와 운전기사 등을 상대로 사건경위를 조사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는 하지만, 이 아이는 이미 우리의 곁에 없다. 이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은 아이의 죽음을 살인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아이를 가진 부모, 아니 이웃으로서 안타까운 심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결국 이 아이의 죽음은 오늘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상실한 이웃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차안에 인솔교사가 있었지만 그는 무엇을 했으며, 운전기사는 아이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있다. 이들이 바로 아이를 죽임으로 몰고 간 카인이다. 아니 우리도 이 아이를 방치한 이웃이며, 카인이다.
 
이 분노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또한 어린이집과 관련된 청원도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어린이집에 카메라 설치해야 한다고 부모들이 말할 때, 이들은 인권을 내세운 카인이 아닌가. 어린이집 교사와 운전기사, 그리고 원장의 인권과 생명이 소중하다면, 원아들의 인권과 생명도 소중하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 할 의무가 있다

이번 어린이집 사건은 아이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간접 살인자이며, 어린이집 원장, 보육교사, 운전기사로서 차량에 탄 원아를 모두 하차 시키지 못한 것과 아이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겠지만, 죽임당한 아이의 울부짖음은 하늘에 사무친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던 어린 아이를 우리가 지키기 못한 책임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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