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성경에 계시된 교회와 한국교회는 모든 분야가 비슷하다고는 하나 겉은 초대 교회와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많은 부분들이 변질(?)된 모습을 하고 있다. 기독교회 교주는 예수 그리스도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초기 교회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기독교는 역사의 부침 속에 성(聖)과 속(俗)을 오가며 기독교의 가치를 세움과 동시에 훼손하는 일들도 적잖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고난의 길을 자초하다가도 자신들의 처지를 솔직하게 고백하자 하나님은 다시 복을 허락하셨음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 1800년대 말 복음이 최초로 선교된 후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는 본질을 떠나 세속적으로 변질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나 우려된다.

세속정치인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아도 기독교는 꿀 먹은 벙어리와 같다. 세례요한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종교 관리들과 당시의 정당인에게 “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 라고 직언을 하였지만, 오늘의 기독교 지도자 중 누구도 세상 정치인들이 국가의 안위는 뒤로하고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계파 기득권 장악에 전쟁을 불사하는 모습을 보고 눈만 껌벅이고 한 소리도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천년 전 세례 요한을 다시 살려 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죄인의 생명과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다. 그런데 교회는 존재 목적이 빗나간 듯하다. 영혼 구원은 딴전이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예배당 건축 경쟁을 벌이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교회는 고급 건물을 가진 부자인데 구제와 봉사에는 아주 인색한 것으로 여긴다. 교회 주변에 가난하고 어렵고 병든 독거노인들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조차도 하지 않는다. 물론 구제와 봉사와 선교와 전도에 교회의 온 힘을 기우리는 중 소 교회들도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한국교회는 이재 이러한 일을 멀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지고 있으니 문제다.

지도자들이 하는 일은 가관이다. 개별 교회에서는 설교 잘하고 유식하고 인품과 인기가 있고 신령한 분이실지 몰라도, 연합조직이나 교단 조직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세속정치인과 진배 다름이 없는 모습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게임의 법칙에서 협동만 잘하면 서로에게 이익인데도 상대를 모를 뿐 아니라 상대를 견제하다 보니 언제나 깨어지기를 바라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의 자질에 문제가 다분하다. 이러한 표리부동한 지도자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성도들이 온전하다면 이는 기적에 가깝다. 한국교회 연합과 교단 조직이 왜 하나로 단합하지 못하고 늘 깨어지고 또 갈라지는 추한 행동을 중지하지 못할까? 마음은 하나로 하고 싶지만 이익배분에 따른 행동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실정이다. 지도자들의 그러한 행동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신앙 또한 닮아가는 모양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찬란한 교회 건물, 그 건물에 출입하는 수많은 교인들은 마치 칠팔십년에 비닐 봉투나 쇼핑백도 유명 백화점로고가 있는 것을 선호하듯 교회도 중대형 교회 자부심을 갖고 출입하는 것 같다. 그런데 교인들은 자부심을 가질지 몰라도 세상 사람들 눈에는 아무 감정도 없이 그저 기업의 사옥정도로 볼 뿐이다. 오히려 중대형 교회주변 거주민들과는 별 나라 사람들로 치부하고 교회로 인한 주차문제, 쓰레기, 통행불편, 소음 등으로 인한 불편만 호소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십자가나 기독교회 다니는 교인들에 대한 주의보가 있다. 신앙인들에 대해 사회에서 왜곡된 신앙생활을 곱게 보지 않는 점이다. 이는 십자가를 앞세운 신흥종교들의 포교 활동으로 인해 가정이 깨어지고 자녀들을 종교 단체에 빼앗기는 웃지 못 할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는 기독교 색깔을 한 신흥종교와 이단들의 포교 활동 대상이 청소년들이다. 포섭 후 쇠뇌교육으로 인한 폐해다. 건전한 교회의 기독교 상징물인 십자가가 어느 때부터 혐오대상으로 낙인 된 것은 이단과 사교도 문제거니와 전통 교회가 교인들이나 사회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원인도 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정치적인 욕구와 개 교회의 중 대형화에 몰두하고 있을 때 교회는 사회인들에게 냉대 또는 혐오 시설로 낙인 될 우려성이 다분하다. 더 늦기 전에 기독교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세속적인 물량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신성이 내재된 초대 교회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감이 타당하다 그런데 현실이 따라줄지 의문이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