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목사

구약에서 ‘여호와’(הוהי)는 6,823 차례 확인되고 있다. ‘거룩한 네 글자’라고 부른다. 현재 구약 히브리어 본문에는 모음이 표기되었으나 본래 유대인들이 어떻게 읽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나님 경외를 중시여기던 이스라엘은 그 분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없었다. 네 글자는 성경의 필사와 대제사장의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서만 허용되었다. 그것도 기원후 70년 성전 파괴 이후에는 부를 수조차 없었다. 야훼(Yahweh)로 추측하기도 하지만 제안일 뿐이다. 구전 전통의 유대교에서는 네 글자를 ‘나의 주’라고 읽거나 심지어 건너뛰기도 했다. 히브리어 모음이 확정될 때 ‘아도나이’에 해당하는 모음을 넣어 ‘나의 주’로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유대교 관습을 모르던 기독교 번역자들이 ‘네 글자’에 포함된 모음과 함께 읽어서 ‘Jehovah’라고 표기한 뒤부터 ‘여호와’로 굳었다.

문법적으로 보면 ‘여호와’일 가능성은 낮다. 유대교의 독법에는 기록을 위한 ‘커티브’와 읽기 위한 ‘커레’가 병행한다. ‘여호와’에 해당하는 네 글자를 기록으로 보면 ‘여호와’지만 실제 읽는 방식은 ‘아도나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도나이 여호와’(hwIhy/ yn"doa])가 되면 ‘아도나이 아도나이’로 중첩되니 ‘아도나이 엘로힘’으로 읽는다(창 15:2). 유대교에서 ‘거룩한 네 글자’는 ‘부를 수 없는 이름’이다. 지금도 회당에서는 아도나이라고 읽는다. <70인역>도 유대의 전통을 따라 ‘ὁ ku,rioj’로 번역하였다. 윌리암 틴들(Tyndale)은 현대 영어번역의 표기에 기초를 놓았다. 곧 히브리어 네 글자를 대문자를 활용하여 ‘the LORD’로 푼 것이다. 아도나이를 살려낸 번역이다. 현대 영어 번역은 ‘Jehovah’ 대신 ‘아도나이’ 독법대로 따라 ‘the LORD’로 표기한다(Tanakh, NRSV, NIV). 학계에서는 대문자로 YHWH로 통용한다.

동양 전통에 피휘(避諱)라는 예법이 있다. ‘휘’(諱)는 군주의 이름을 가리킨다. 왕이나 조상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피하여 공경하는 관습이다. 더러는 비슷한 다른 글자로 바꿔 쓰는 대자(代字), 아예 글자를 쓰지 않고 공백으로 두는 결자(缺字), 그리고 한 획이나 마지막 획을 쓰는 않는 결획(缺劃) 등이 있다. 윗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다는 그 문화권의 인식 때문이다. 예컨대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이(李)와 발음이 같은 ‘이’(鯉)를 먹지 못하고 글자로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조선시대 대구의 원래 표기는 ‘大丘’였으나 공자의 이름 ‘구(丘)’를 피하기 위해 현재의 ‘大邱’로 바꾼 예다. 한편 로마 시대에는 숫자 4를 현재처럼 IV로 쓰는 대신 IIII로 사용한 예가 있다. 왜냐하면 IV가 로마의 주신 ‘하늘과 천둥의 신’이며 ‘모든 신 중의 신’인 유피테르(IUPPITER)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드물게 사용된 피휘에 해당한다.

한글성서에는 ‘거룩한 네 글자’를 ‘여호와’(개역개정, 1938/1998), ‘야훼’(공동번역, 1977), 그리고 ‘주’(새번역, 1993; 가톨릭 성경, 2005) 등 세 가지로 번역하여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앞에서 살핀 대로 ‘거룩한 이름 네 글자’를 ‘여호와’나 ‘야훼’로 옮긴 것은 유대인의 전통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 발음도 확인할 수 없다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따라서 대부분 최근 번역성서가 주(the LORD)로 표기하면서 하나님 경외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간혹 ‘주’를 주인과 종의 관계를 떠올리며 봉건적인 칭호라고 평가절하하는 경우도 있다. ‘주’는 주인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돈’(adon)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나의 주님’ 아도나이는 주인과 종이라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계약적 관계’의 일체감과 상호연대감을 확보한다.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ὁ ku,rioj)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요 13:13)고 말씀하신다. 복음서의 주(the LORD)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다. 유대교에서 하나님 네 글자를 ‘아도나이’ 곧 ‘나의 주님’이라고 불렀듯! 하나님에 대한 ‘아도나이’ 칭호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내포한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경외하며, 그의 자녀 (또는 종)은 주인이신 절대자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며 서로의 하나됨을 확인한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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