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 장병들이 지난달 25일 강원도 홍천 풍천리 778고지에서 6·25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기독교계가 만든 대체복무제 초안엔 유해 발굴 업무가 포함됐다. 기독 변호사들과 바른 군인권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병역의무와 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 초안을 내놨다. 이 기준에 따라 법안이 제출된다면 군부대 내 합숙을 원칙으로 하는 최초의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이 될 전망이다. 국민일보가 18일 입수한 ‘병역법 개정을 위한 교계 기준안’에 따르면 대체복무 기간은 육군(2년)의 2배 이상이며 군부대 내에서 합숙하는 게 원칙이다. 복무 분야는 지뢰제거 작업 등 평시 민간인출입통제구역 일대의 평화적 활동, 군 및 보훈병원의 간병활동,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 기타 영내 대민 지원 사업 이다. 대체복무요원 선발과 운영은 대체복무요원 선발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위원회는 병무청 소속으로 변호사와 종교계 인사가 참여한다. (출처 : 국민일보. 2018.0719. 백상현 기자)

2007년 국방부 안을 만드는 과정에 관여했던 한 예비역 장성은 “도서지역 복지시설을 많이 다녔는데 열악했다. 그런 곳에서 더 길게 일하면 (현역과) 형평성도 맞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당시 ▶소록도에 있는 한센(나환자) 병원 ▶경남 마산의 결핵병원 ▶서울등지의 정신병원 등 9개 특수병원과 200개의 치매노인 전문요양시설 등을 예로 들었다. 지금도 현역 복무만큼 힘든 곳이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 이철희 의원 안엔 아예 ‘신체적·정신적 난이도가 높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문제는 국방부가 아무리 힘든 곳이라고 주장해도 국민 눈높이에 맞을 지다. 합숙 여부도 쟁점이다. 국방부에선 합숙을 원칙으로 검토하고 있다. 매년 600명 안팎인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수용할 시설을 구하는 게 난제다. 실행상 출퇴근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출처 : 중앙선데이] 2018.07.07. 기자. 고정애 기자. 박성훈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대체복무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러 가지 대안들이 연구되고 있으나 좀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관심과는 멀어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현역병들에 관한 심도 있는 관심과 배려 등을 연구하는 데는 소홀히 하고 오직 대체복무에만 쏠림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감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군 복무 중에 있는 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전투력을 높이며, 사기진작에는 무엇을 필요로 할까 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국방부 등 여러 기관에서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군 복무자들이 실망, 좌절, 분노, 열등, 자책, 패배감 등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전투력 강화에 필수 요건이다. 그런데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다는 특정종교인들의 위장된 포교행위에 힘을 더해주는 것 등이 원인이 되어 사기진작에 방해요소가 된다면 전투력강화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럼으로 필자는 모병제가 법제화되기 전까지는 대체복무를 반대하여 왔다. 그러나 법률상 꼭 대체복무제를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면 군 복무자들에게 대체복무자들로 인해 사기저하를 갖게 하지 않도록 하기위한 방법들을 심도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전방부대 복무자들은 눈이 내리는 것을 “하늘이 내리는 똥 가루”라는 표현들을 하기도 한다. 제설작업 등의 어려움을 표한 것이다. 그 뿐인가 군에서는 시간적 여유를 주면 기강이 해이해 진다고 해서 사역(使役) 등을 시키기도 한다.(필자의 복무시절) 따라서 현역복무 자들은 교육, 훈련, 특기교육, 여가활용 등을 하는 시간을 갖게 함으로 잡무 보다 전력증강과 사기진작의 시간을 갖게 하고, ‘양심적 병역거부 자들’은 집총을 거부하니, 후방에서 대체복무를 하게 하지 말고, 전방 등에 투입, 별도의 막사에서 병영생활을 하게하며, 집총하지 아니하는 지뢰 탐지(생명을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 내무반 청소, 연병장 청소, 군사도로 보수공사, 현역복무자들의 빨래 등의 수발에 종사(從事)하도록 하였으면 한다. 최상의 방어력만이 곧 생명과 국가를 수호(守護)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빌립보서 2장 30절).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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