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목사

본문은 구약의 본문 중 가장 골치 아픈 구절이다. 현재 기록이 워낙 고어체적이고 내용마저 지나치게 단순해서 독해하기 어려운 문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 모세를 부르시며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라’고 명하신다(출 3:10). 모세의 사양과 거절에도 하나님은 아론과 지팡이를 주어 애굽의 바로에게 보낸다. 아론은 모세의 대변자요 지팡이는 바로에게 이적을 보여줄 것이다. 모세는 내키지 않지만 큰 일을 완수하려고 길을 떠났고 한 숙소에 머문 동안에 일이 벌어진다.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하신지라.’

독일성서공회의 해설은 솔직한 편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보내고는 하나님 몸소 그를 죽이려하신 까닭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 구절을 수수께끼 같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이렇다.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의 경험과 이해로 헤아릴 수 없는 측면이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은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어떤 것을 거듭해서 행하실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마치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나 야곱의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한 기사처럼 말이다(창 22:2; 32:22-32). 마치 삶(live)을 거꾸로 쓰면 악(evil)이 되듯 하나님의 명령에도 언제든지 악마의 계략이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한 말씀이다(민 22:20). 그렇다고 이 구절을 어렵다고 단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과연 유대교에서는 어떻게 풀고 있는지 랍비들의 입장을 들여다보자. 사실 여호와가 모세를 죽이려한 단서는 26절의 ‘할례’(물라)에서 찾을 수 있다. 모세의 아들 ‘엘리에젤’은 제 때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다. 할례는 본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며 영원한 약속이다(창 17:9-14). 따라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한다(창 17:12). 그러나 모세는 여행 중이어서 숙소를 찾느라 할례를 행하지 못한 것이다. 랍비들은 ‘숙소’(말론)와 ‘할례’에 주목한다. ‘말론’은 할례의 ‘물라’와 비슷한 발음 때문에 둘 사이의 어떤 암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즉 모세는 여행 중 숙소를 찾느라 아들이 의무적으로 받아야할 할례를 놓쳤다.<Exodus Rabba 5:8>

여호수아 본문은 세 차례나 ‘광야 길에서’를 강조하며 출타 중에는 할례를 받지 않은 사실을 강조한다(4, 5, 7절). 카수토는 여행 중에 할례가 유예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이동하는 중에 할례를 행하면 상처가 덧나거나 질병에 노출되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Cassuto, 59> 아마도 이로 인해 나중에 예외적인 규정을 두었을 것이다. 예컨대 여호수아 5장은 여행 중에는 태어나고 팔일 만에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친절한 규정을 제시한다(수 5:2-7).

따라서 모세는 아들의 할례와 하나님의 명령 가운데서 유예될 수 있는 경우를 선택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이동 중에 ‘엘리에젤’에게 할례를 베푼다면 적어도 사흘 동안 그의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삼일을 허비한다면 애굽으로 떠나라는 사명 완수가 미뤄질 수밖에 없다.”<M. Carasik, The JPS MiQraot Gedolot: Exodus, 31.> 모세의 고민을 드러내는 주석이다. 당연히 모세는 여행 중 할례의 유보를 인지하고 그들의 숙소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언제까지 할례를 유예할 수 없는 법! 거처를 찾았다면 곧장 그의 언약 의무인 할례를 아들에게 시행해야 옳았다. 그렇지만 모세는 그러지 않았기에 하나님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십보라는 여행 중 할례가 면제되는지 알고 있었다. 막상 모세가 죽게 되자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아들의 포피를 잘라 모세의 발에 갖다 대고 ‘당신은 나의 피 남편이다’고 선언한다. ‘피 남편’은 하탄 담밈이다. 사실 동사 ‘하탄’은 ‘포피를 자르다’는 뜻이고, 재귀동사로는 ‘사위/며느리, 또는 시아버지/장인을 삼다’가 된다. 모세가 아들의 할례를 통하여 십보라의 ‘피 남편’이 된 것이다. 포피를 자르는 할례는 제의적인 관례로 볼 수 있지만 그 의미는 포피를 자르는 사람(십보라)과 대상(엘리에젤), 결국 남편(모세)과 연대와 결속, 그리고 일치와 교감의 강화에 있다. 아들의 포피를 자르는 할례의식은 단지 제의적 행위로 그치지 않고 양자가 내면의 깊은 일체성을 갖게 하려는 신앙의식의 발로이다.

한신대 구약학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