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붙어서 읽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읽는 것이다
칠 년 만에 받은 목숨
매미는 그 목을 걸고 읽는 것이다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
매미가 울면 그 나무는 절판된다
말리지 마라
불씨 하나 나무에 떨어졌다

 

▲ 문 현 미 시인
매미 울음이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여름이다.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무더워 힘든데 매미까지 울어대니 여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매미 소음 때문에 집중을 잘 못하는데 시인은 오히려 매미 울음에 몰입한다. 누군가에겐 소음인데 시인에겐 시적 대상으로 다가온 것이다.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니 몹시 궁금해진다. 브랜드의 네이밍이나 광고 카피가 무척 중요하듯 시의 제목도 한 편의 시에서 큰 역할을 한다. 시의 분위기를 이끌기도 하고 주제를 암시하기도 하며 관심을 환기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 시에서 제목은 어떠한가. 앞에서 열거한 내용을 다 함의하고 있다. 그래서 시의 참신한 제목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박시인은 매미의 생태를 집중적으로 관찰한 후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통해 개성적 시각의 시를 창작한 것이다. 매미가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운다’고 한다. 그것도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답은 ‘칠 년 만에 받은 목숨’이기 때문이다. 매미는 땅 아래 어둠 속에서 7년을 견디고 마침내 지상에 올라 온다. 아슬한 우화의 과정을 거친 후 얻게 되는 생명이다. 그래서 매미는 ‘그 목을 걸고’ 울음을 운다. 암컷을 애타게 찾는 수컷 매미의 구애 목소리는 처절하기까지 하다. 크게 울어야 암컷의 관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짝을 만나 잠시 지상에 머물다가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러고 보니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글’만큼 두둑한 배짱으로 치열하게 사는 생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대상에 대해 온몸으로 다가가는 시인을 만난다. 시인의 눈은 날카롭다 못해 깊은 관조의 경지에 이른다. ‘누가 이 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는 바로 시인 자신의 시선과 직결된다. 매미를 뜨겁게 읽어 내는 시인의 심장이 살아서 펄떡이는 것을 느낀다. 그는 마지막연에 멋진 시의 제목을 행으로 등장시킨다. 그만큼 소중한 제목이다. 매미가 목숨을 걸고 나무를 뜨겁게 읽어내는 불씨!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생명의 자연 현상을 누가 이토록 절절하게 읽어 낼 것인가. 박시인만의 특장이다. 연일 기온이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매미의 구애 세레나데도 더 커지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높푸른 가을이 멀지 않으리니...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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