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서이다. 민심을 살피기 위해 북쪽 세겜에 행차했다. 백성의 대표들로부터 선왕 솔로몬이 짐 지운 노역과 세금이 힘겨우니 경감시켜 달라는 청을 받게 된다. 궁으로 돌아온 르호보암은 신하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구한다. 그러자 선왕을 섬기던 원로들은 왕에게 백성들의 청을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그러나 패기만만한 르호보암의 젊은 동료들은 왕이 무르게 보이면 백성들이 올라서려고 할 것이니 강하게 나오라고 주문한다. 르호보암은 젊은 동료들의 말대로 강하게 나온다. 천추의 한이 될 통일 왕국의 분열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원로들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귀감으로 삼을만한 명언을 남겼다. 왕이 만일 ‘오늘 하루’를 백성의 종이 된다면, 백성들은 ‘모든 날’을 왕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왕상 12:7). 물론 ‘오늘 하루’는 단 하루만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 한 나라를 다스려야 할 통치자로서 잠시 동안의 혈기를 내려놓고 백성을 섬긴다면 백성들은 진심으로 왕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충언이다. 이 대목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린 그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의 종이 됨으로써 세상 만민이 ‘영원토록’ 당신의 종이 되게 하신 것이다. 예수를 처형한 백부장은 이런 예수를 보고 “이분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막 15:39)고 진술한다. 이 장면 또한 놀랍다. 이보다 앞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막 8:29)라는 고백을 했음에도 곧이어 주님의 길을 가로막는 사탄이 된 일이 있다. 그로 인해 미완성으로 남겨진 그리스도 고백이 십자가형을 집행한 백부장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이 또한 신비 중에서도 신비이다. 그분이 하나님께서 보낸 구원자이심을 예수를 죽인 사형 집행관의 입에서 나오다니! 하지만 악한 자들이 십자가로 인해 변화되지 않는다면, 십자가는 ‘능력의 말씀’일 수 없을 것이다.

통일 왕국 이스라엘이 단 하루도 백성을 섬길 줄 모르는 오만한 왕으로 인해 영영 분열한 것처럼, 오늘날 남북한의 분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복음이 이 죽임의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어찌 복음일 수 있겠는가. 복음은 우리 개개인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철옹성 같은 체제도 무너뜨리는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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