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연전에 일본의 중견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는 “오늘날 작가는 세상의 눈치 속에서 자신을 성형해가는 존재”라고 했다. 세계화된 시장논리 가운데서 작가 역시 소박한 삶을 가꾸려는 바람은 여지없이 뭉개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한 말이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향한 진실보다는 자신이 일그러지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 판타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비쳐지는 모습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세상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신을 눈치껏 성형해야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상에서 사랑 받는’ 것의 화려함 뒤에는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일상의 소박한 행복(소확행)을 찾아 제주도에 정착한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고충을 호소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온라인 기사를 본 일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초인종을 눌러대고, 사진을 찍고, 소란을 피워대니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부부가 스스로 불러들인 일이기도 하다. 정말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바랐다면 부부의 침실까지 공개하며 ‘세상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변의 내밀한 사생활까지 공개하며 세상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진 애쓰고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에 의하면,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고, 칭찬하고, 높이 평가해주는 타자를 필요로 한다. 안정된 자존감을 갖기 위해 나는 내가 타인에게 중요한 사람이며, 타인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표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시선이 사라지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신자유주의 [성과사회]의 심각한 문제이다. 자기애로 뭉친 나르시시즘은 자기를 고립시키고, 타자를 도구화함으로써 마침내 자존감을 잃게 한다.

여기에 신앙의 자리가 있다. 참된 자존감을 위해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자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형성된 자아가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결코 도구화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분은 우리의 일그러진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신 분이다. 그러니 참 행복을 바란다면 세상에서 사랑받기보다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 되기를 바랄 일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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