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2. 어거스틴의 은총론 재발견

인간의 죄와 은총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종교개혁자들의 인식에 있어서 깊은 영향을 끼친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을 살펴보자. 어거스틴(354-430)이 철퇴를 가했던 펠라기우스(425년 사망)는 5세기 서구 유럽교회 내에서 피조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에서 아담이 범한 원죄의 영향으로 오염과 죄책이 전체 인류에게 전수되어졌다는 것을 부인했다.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성경에서는 찾을 수 없다. 스토아철학에서 사용하던 단어인데, 터툴리안을 거쳐서 사용되었고, 어거스틴이 정확한 개념을 정립했다. 각 개인은 출생할 때에 전혀 오염이 없는 상태로 태어나서 스스로 의지의 결정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 펠라기우스의 사상에는 초기 오리겐과 암브로시애스터(Ambrosiaster)의 영향력이 들어있었다. 십 여 년간의 논쟁 끝에, 주후 418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어거스틴의 주도하에 펠라기우스와 그의 지지자 켈레시우스(Celestius)가 주장하던 원죄의 부정, 유아세례에 대한 거부, 과거의 죄악들을 속죄하는 은총에 대해서 제한성 등을 주장하는 것들은 정죄 받았다. 영혼의 원래 상태를 간직했던 아담의 타락이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펠라기우스는 성경의 교훈대로 해석하지 않았고, 역시 도덕주의자들과 인본주의자들의 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펠라기우스는 최초 아담이 태어날 때의 인간의 본성과 타락 이후에 인간성의 조건에 대해서 구별하는 데에 있어서 실패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칭의는 그리스도의 모범(per exemplum Christi)을 따라서 자유의지(liberum arbitrium)로 자발적인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모방하려는 인간 자신의 자유롭고 도덕적인 노력에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은 펠라기우스의 추종자 줄리안(Julian of Eclanum)에게서 발견되었고, 어거스틴이 그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논박하였다.

펠라기우스에게 있어서 의지의 자유는 매 순간 두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자유의지 (liberum arbitrium)이다. 따라서 의지를 그 특성과 관련해서는 원인이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의지의 주체 안에는 정확하게 선하거나 악하거나 어느 쪽으로 어떻게 발견되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증표의 근거가 처음부터 아예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무와 책임성을 세우려면 선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 아래 있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선을 행할 능력도 없다면, 책임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펠라기우스는 원죄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죄가 없이 도덕적으로 중립상태에서 태어난다고 말한다. 원죄와 유전은 서로 대립적인 개념이 되고 있다. 모든 죄인은 개별적으로 시험을 받는다. 펠라기우스에 의하면, 아담이 타락했을 때에 그의 타락은 오직 자기 자신의 본성만 바꿨을 뿐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에 가지고 있는 덕이나 죄를 생각할 수 없다. 가인과 아벨, 셋은 단지 그들의 부모들이 눈 앞에서 계속해서 악한 모범을 보여 준 것 만큼만 악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가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칭의론을 세웠다고 비판했다. 주후 411년, 『공로의 죄성과 사면』(De peccatorum meritis et remissione)에서 펠라기우스가 인간의 자유의지에 너무나 많은 것을 부여함으로써, 특별은총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효과를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지닌 능력에 대해서 펠라기우스는 과장하였음을 지적한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비록 죄인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적절하게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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