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우체국

너희들 걱정하지 말아라
난, 잘 있다 건강하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여기가
천당이다
천당이다
좁고 주름진 방에서 어머니는
전화를 주신다
이 외진 가을 저녁에게까지

▲ 문 현 미 교수
주여, 지난 여름은 참 무더웠습니다는 고백이 절로 나온다. 폭염이 연일 지속되어 모두 열대야를 견디고 견뎌내야 했다. 착한 태풍 솔릭이 지나가고 나니 가을 장마가 찾아와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자연의 변화는 우리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견뎌야 하는 게 삶의 모습이다. 폭우가 지나간 하늘은 씻은 듯 맑고 높푸르다. 바라보면 볼수록 하늘 호수에 첨벙 빠져들 것 같다. 김수복 시인의 시「하늘 우체국」이 그런 느낌을 준다.

오늘날 시가 점점 어려워지고 길어지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로부터 시가 멀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김시인의 시는 그렇지가 않다. 시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행간을 헤맬 필요가 없다. 편안하게 앉아서 읽어도 되고 길을 걸으며 읽어도 될 만큼 시가 바로 가슴에 와 닿는다. 참신한 제목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세상 어디에 하늘 우체국이 있을까. 시인의 상상으로 만들어 낸 그 우체국이 몹시 궁금해진다. 시적 화자의 어머니께서 곧잘 이용하시는 우체국이 하늘 우체국이라니. 무척 정겹고 푸근하다.

시의 첫 행은 어머니의 염려로 시작된다. “너희들 걱정하지 말아라/난, 잘 있다 건강하다” 시를 읽는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머니의 따뜻한 말씀을 듣고 그냥 편안해진다. 더욱이 이어지는 다음 행 “... 여기가/천당이다/천당이다”를 읽다 보면 마음 속에 ‘천당’이라는 시어가 스며들게 된다. 자식을 먼저 생각하시는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이 아무 거부감 없이 심연에 자리 잡게 된다.

언뜻 보면 쉬운 시어들로 구성된 것 같지만 결코 쉽게 씌어진 것이 아니다. 좋은 시는 시어의 첨예한 선택과 신중한 배열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김시인의 「하늘 우체국」은 맑고 깨끗한 시선으로 엄선한 시어들을 탁월한 행갈이를 통하여 미학적으로 완성한 시편이다. 시를 읽어 내려가면 어머니의 마음이 천국임을 깨닫게 된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중한 죄짐 벗고 보니/슬픔 많은 이 세상도/천국으로 화하도다”라는 찬송이 떠 오른다. 주께서 동행하시면 그곳이 어디든지 천국임을 좋은 시로 인해 다시 확인하는 기쁨을 누린다.
그토록 기다리던 가을이 왔다. 잠긴 문의 빗장을 열고 기억의 저 편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좋은 시는 사색과 평안으로 이끌고 서로 교감하게 하는 힘이 있다. 올 가을에는 추억 속 흔적을 찾는 순례의 길에 나서고 싶다. 그때 만나는 친구에게 따뜻한 거피 한 잔 대접할테니 그대, 내게 오시라.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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