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이미 수년 전부터 한국교회와 거기에 임직하는 지도자들의 형태를 제왕이 거주하는 봉건적 행태라는 쓴 소리 지적이 있었다. 지금 한국교회는 크거나 작거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교회가 목회자 중심(?)이다. 순수 목회자 중심이 권력적이지 않는 교회도 있겠으나, 목회자 중심이라는 말을 다른 정치적으로 표현하면 제왕적, 봉건적이라고 빗댈 수 있다. 왜 이렇게 까지 표현을 해야 하느냐 하면 오늘의 한국교회가 목회자들의 교회 치리가 중세 유럽의 봉건적 통치 방식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데 있다. 마치 나라의 대통령 중심제의 정치 구조와 교회의 목회 구조가 거의 비슷하고, 다른 점은 세속적인 정치와 종교적인 조직의 차이점 밖에 없기 때문으로 본다.

나라 정치를 책임진 대통령도 대통령의 직무는 모두 민중 즉 백성들에게서부터 위임 받은 권한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탄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정치의 윤리다. 종교의 특성상 목회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신자들이 웬만하면 비토하거나 거부할 수 없어 본인이 싫으면 스님이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남과 같이 교회를 빠져 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회에서 목회자를 비토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모든 교회가 형식상으로는 성도들 중심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항상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회자의 목회방침에 따라 교회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교회 목회자의 권위는 대단하다. 거기다가 중대형 교회의 목회자의 권위는 세속 정치인의 권한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

교회의 조직 구성, 인사관리, 예산 계획 및 집행, 교우 관리, 교회 사업 구상 및 진행, 교회간의 협의의 모든 권한이 목회자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를 개척 설립한 일 세대는 거의 신격화되기 쉽다. 아마도 기독교 색채를 띤 이단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점 위에다 비기독교적인 이교의 신비감과 카리스마를 덧대어 신자들을 통제하다보니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기독교회 단체인 연합회 구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모두 개교회의 절대 권력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양보의 미덕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원인이다. 그 가운데 상위1% 중대형 교회 지도자들은 연합회 구성이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이탈하여 또 다른 연합회를 구성한 후 다시 통합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챙기는 모양은 세상 정치인들의 정치 술수보다 더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헤롯왕은 하나님께 드릴 백성들의 영광을 가로 챈 죄로 인해 주의 사자가 치니 충이 먹어 급사(행12:23)했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오늘의 봉건적 제왕들의 속셈에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이는 교회 지도자의 위치가 자칫하면 신의 대리자를 자처 할 수 있으며, 신의 카리스마를 인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자리다. 구약의 선지자 예언자 선견자들은 하나님이 지시한 사명에 대해서는 신적 권위를 통해 사명을 완수 하였으나, 그 신이 위임한 권한을 사리사욕에 사용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초대교회 골격을 세운 사도 바울의 행적에서 구약 선지자들의 공사(公私)구별을 확인할 수 있다.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쳐준 사건으로 인해 바나바를 쓰스, 바울은 허메라는 신의 화신으로 믿고 제사하려 하자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찢고 자신들도 사람임을 밝혀 겨우 제사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행14:8-18) 이들의 신앙의 공사구별 행동은 오늘 모든 지도자들의 사표이며 가르침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모습은 세월을 거꾸로 사는지 오히려 오백년 전 종교개혁 이전 가톨릭의 전형적인 모습을 닮아 가고 있음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총 속에 세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성장했음은 누구나 아는 바다. 그 성장의 공을 선교의 초석을 놓은 믿음의 조상들의 헌신에 감사를 드려야함이 옳다. 선교초기 신앙을 접한 선조들은 선교와 전도와 봉사를 위해 개인의 시리사욕은 모두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을 위해 헌신했다. 그 터 위에 세워진 현대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선교초기 신앙 정신은 없어지고 물욕과 명예와 성장 병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마치 봉건 시대와 같이 더 넓은 영토를 위해 이웃 영주들의 영토를 침략하여 왕국의 세력을 확장하는 모습이 오늘의 한국교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중대형 교회는 목회자를 필두로 약소교회를 평정함과 동시 내 교회성장을 위해 부흥성회를 줄기차게 열어 네 교회 내 교회 할 것 없이 합병한다. 교회간의 윤리는 사라졌다. 강자만이 생존하는 정글과 다름이 없다. 사실 봉건시대의 왕국들은 모두 사라졌는데도 말이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