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 물질이다.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가 있어도, 아무리 좋은 꿈과 이상이 있어도 먹을 게 없으면 공허하다. 출애굽 당시 굶주린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출 16:6)이라고 말씀하신다. 만나에 대한 약속이기는 하지만, 놀라운 말씀이다. 노예들에게 저녁은 편히 잠잘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주인이 편히 잠들도록, 아니면 주인의 즐거움을 위해 깨어서 봉사해야 할 시간이다. 노예들에게 밤은 고통의 시간이요 저주의 시간이다. 그렇게 산 이들에게 밤을 휴식의 시간이요,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할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다.
출애굽 당시 ‘만나 체험’은 백성들에게 두 가지 근본적인 성찰을 가지게 했다. 첫째,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질을 하나님께 의존함으로써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했다. 둘째, 생명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게 했다. 인간은 양식을 얻기 위해 너무나 많은 죄를 지으며 산다. 단지 일용할 양식이 아닌 내 곳간을 채우기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고, 죽이고, 피눈물 쏟게 하고, 불행하게 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재앙도 알고 보면 인간의 탐욕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안 모리스(스탠포드대 역사학)는 [가치관의 탄생]에서 인간이 에너지를 저장하면서부터 계급과 불평등이 심화됐음을 말한다. 수렵채집시대에는 누군가 양식을 얻게 되면 공동체가 함께 나눠 먹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농경사회가 되고, 산업사회가 되고,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에너지 즉 양식을 나눠먹지 않고 독점함으로써 점차 인류는 불평등이 깊어졌다. 그러함에도 인류는 문명화 과정에서 평등을 지향하고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게 됐다는 게 모리스의 지론이다. 혼자 먹는 양식이 인류를 불행하게 한다. 인간은 자기가 먹을 양식을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생명을 저장할 수는 없다. 생명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다. 내 생명이 건강하려면 생명세계가 함께 건강해야 한다. 인류가 기후변화를 염려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불평등이 극단으로 심화되는 한국사회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대각성과 함께 획기적인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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