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음

등이 아프다면
네 십자가의 무게는
적당한 것이다

 -『창조문예』 18년 9월호에서
 
*조예린 시인 : 『시와 시학』으로 등단. 편운문학상.
                    시집 『나는 날마다 네게로 흐른다』 등 3권 상재.

▲ 정 재 영 장로
십자가는 가시적이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매우 관념적이고 포괄적이다. 십자가는 희생 헌신 봉사 또는 죽음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정치가들은 자기 욕망을 실현하면서 그 현실의 어려움을 십자가를 진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아이러니 한 일로 비웃음을 산 일이 종종 있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는 언어로 끝나는 일이 아닌 고통 즉 책임이 당연하게 동반한다는 것이다. 즉 고통이 없는 것은 언어유희일 뿐, 스스로 고통을 가질 수 있을 때만 십자가의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는 말이다.

또한 십자가를 지는 사람에게 감당할 수 있는 역량(수준)이 있다는 것이다. 아픔을 감당할 수 있는 등(능력)의 한계는 각각 차이가 있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 나아가 그것을 결정할 권한도 자신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십자가를 배려해주는 편에서 결정한다. 그 무게가 사람마다 각각인 것은 그것을 지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변경되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십자가를 맡기는 사람이 화자로 되어 있다. 그래서 시인은 냉정한 입장을 취하는 방법을 선택함으로 3자의 위치를 견지한다.

제목 <좋음>이라 함은 십자가의 기회 자체가 좋고, 또한 감당할 수 있어 좋고, 그 무게의 수치처럼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 좋다는 뜻이다. 결국 헌신과 봉사 등은 고난을 동반하지만 심령(정신)으로는 좋은 과정을 통해 보람된 결과를 가지고와 십자가를 준 편에서도 좋다는 것을 연상하게 해준다.

여기서 십자가의 언어를 일차적 기호인 종교적인 부분으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직장이거나 가정이거나 사회에 걸친 모든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총체적 의미로 확대하더라도 무방하다. 시에서 비유를 동원하기에 결과적으로 애매성을 만드는 것이라서 가치 있는 자기희생은 모두 십자가 영역으로 해석해낼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진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시는 관념을 사물로 형상화하는 작업이니까 더욱 그렇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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