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친구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제자는 학식과 덕망이 높은 스승을 스스로 찾아가서 그의 문하에 들어감으로써 제자가 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사람을 제자로 삼지 않고, 당신의 선교 현장 곧 삶의 현장에서 만난 이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고뇌에 함께해줄 친구와 같은 사람을 제자로 삼으신 것이다.

하지만 세리 레위를 제자로 삼으신 것(눅 5:27-32)은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세리는 유대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된 사람이다. 매국노, 변절자, 반역자의 대명사인 자요, 강도, 살인자와 동류로 죄인 중에서도 가장 등급이 높은 죄인 취급을 받는 자이다. 그런 세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친구로 삼으셨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루 말할 수 없는 소외 가운데 있는 사람을 부르셨다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족스런 설명이 되지 못한다. 당시 사회의 종교적 편견에 대해 의도적으로 도전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꽤 인도적인 관점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만족스럽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방식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대로 세리 레위를 제자로 삼으신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런 방식으로 사랑하신 분이다. 이스라엘 역시 세리와 다를 바 없는 종족이었다. 당신의 첫사랑을 수시로 배반하고 바알과 짝 짓기를 한 자들이다. 겉은 하나님을 섬겼으나 영혼은 이방신에게 진액을 빼앗겨버리고 껍데기만 남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거죽만 남은 자들에게 다가가시어 새롭게 시작하자고 하신 것이다. 세리 레위도 그런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는 자이다. 그럼에도 세리 레위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름에 즉각 응했다. 그만큼 존중받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레위는 그 일이 얼마나 기뻤던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해서 큰 잔치를 벌였다. 동료들도 불러서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다. 활기 넘치는 생명의 축제를 연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막 2:17)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죄 가운데 있는 이들을 부르신다. 간음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방식대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당신의 친구로 맞이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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