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하나님은 양치기에 무료한 모세를 불러 ‘내가 함께 하겠다’며 조상들의 하나님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연거푸 거절한다(3:11,13; 4:1). 그 때마다 하나님은 자신감을 가지라며 몇 가지 증거를 제시한다. 첫째는 지팡이가 뱀이 되고(2-4절), 둘째는 손에 나병이 생긴 것이며(6-7절), 셋째는 나일강 물이 피로 변한 것이다(8-9절). 이처럼 명백한 이적이 모세의 눈앞에서 벌어지는데도 그는 바로 앞에 나설 자신이 없다.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10절).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해 말을 못한다고 물러선다. 모세의 네 번째 거절이다. 한글 번역은 ‘뻣뻣하다, 둔하다’지만 히브리어는 ‘무겁다’(카베드)도 하나의 단어다.

구약에서 ‘카베드’는 형용사로 문자적인 의미는 ‘무겁다’이며 출애굽기에서는 크고 많은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출 8:30; 9:3, 18, 24; 10:14; 12:38; 19:16). 부정적인 구문에서 카베드는 마음에 부담이 되거나 두려운 상태, 또는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에 적용된다. 즉 피곤하거나(출 17:12), 과중한 업무(18:18)로 인하여 느려진 말투와 불분명한 소리를 가리킬 때도 카베드가 사용된다(4:10; 겔 3:5f). 한편 바로의 마음이 완고해져서 신체의 기능이 저하될 경우에도 쓰이고(출 7:14), 눈이 침침하거나(창 48:10) 귀가 둔해져서 듣지 못할 때도 카베드로 표현된다(사 59:1). 뒤에 열 가지 재앙이 덮칠 때 카베드는 더욱 강한 어조로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한다(9:3, 18, 24; 10:14; 12:38).

위 본문에서 카베드는 입(페)과 혀(라숀)가 동시에 언급되어 모세의 말 실력이 대수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모세를 다시 설득한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 나 여호와가 아니냐’(11절). 창조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니 너는 가서 나의 명령을 수행하라며 주신 말씀이 압권이다.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네 할 말을 가르치리라’(12절). 도대체 ‘네 입과 함께’라니 무슨 뜻일까?

히브리어 ‘페’는 입을 가리키는 낱말로 500회 이상 언급되는 중요 단어다. 주로 말하는 기관으로 하나님 뿐 아니라 사람에게 빈번히 사용된다(출 4:10, 11, 12, 15, 16; 13:9; 23:13). 입은 보통 말하는 능력을 뜻하기 때문에 예언자는 하나님의 입이 된다(사 1:20; 40:5; 렘 9:11; 15:19; 호 6:5). ‘페’와 나란히 쓰인 ‘라숀’은 혀 또는 언어를 의미하나(시 10:7; 37:30; 66:17; 73:9; 78:36)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모세가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며 겸양의 모습을 보인 것은 그가 말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고 상대를 설득할만한 말 재변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드러냄으로써 하나님께 자신이 이스라엘을 인도해낼 적임자가 아니라며 거절한 것이다. 이 점 때문에 유대교의 라시와 몇몇 학자들은 모세가 말더듬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븐 에스라는 태생적인 약점 때문에 모세가 어눌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70인역>의 번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ivscno,fwnoj kai. bradu,glwssoj. 곧 ‘더듬거리는 소리와 느린 말투’는 이븐 에스라의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따라서 제롬의 불가타는 상당히 은유적인 표현으로 번역하였다. ‘나는 재치있게 받아치지 못하고 어둔한 말투를 가진 사람입니다.’

모세의 여러 차례 거절은 지나친 겸손을 넘어 불경이 아닐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프로이트는 모세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사람’이라고 거절한 데 대하여 상당히 설득력 있게 설명한 바 있다. 이집트와 미디안에서 생활하던 모세가 히브리어에 능숙하지 않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바로와 대면할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히브리어 능력은 어색하다. 어쨌거나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하신 것은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3:12) 약속보다 더 적극적이며 구체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그것은 ‘네 입과 함께’라고 말씀하신 것 때문이 아니라 ‘가르치다’에서 앞으로 계시할 ‘토라’를 읽어내야 한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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