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북왕국 여로보암2세 때이다. 불의가 하늘을 찌르고 있음에도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정의를 외치는 자가 없었다. 이때 남왕국의 아모스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고 북왕국에 올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자 북왕국 왕실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가 눈엣가시로 보였다. 아마샤는 아모스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으나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밥 얻어먹으려면 네 고향이나 가서 하라’며 추방을 시도한다. 아모스의 대꾸이다. “내가 밥이나 얻어먹으려고 이러는 줄 아시오? 나는 내 농장에서 양을 치고 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심판을 전하라고 하시니 내가 어찌 당신 따위의 말에 물러서겠소!” 라며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다(암 7:17).

우리 주변에도 권력 근처에서 행세하는 성직자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모스 같은 예언자는 보이지 않고, 아마샤 같은 썩은 제사장만 보인다. 시대가 어지럽다는 증거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로부터 택함 받은 자로 인식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신앙의 기초가 인간 내면의 각성(覺醒)에 의하지 않고, 위로부터 계시된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밝히는 대목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를 향한 당신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b)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신 것이다. 이 문맥에서 “사랑 안에서”가 중요하다. ‘거룩함’ ‘흠 없음’ 만을 내세울 경우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바리새인이나 율법주의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거룩함을 빙자해서 특권의식에 젖어 살았음은 말할 것 없고, 사회적인 약자를 차별하고 배척하는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거룩하고 흠이 없되 ‘사랑 안에서’ 그래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 죄악을 질타할지라도 사랑 안에서 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성소수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저 옛날 바리새인들과 판박이다. 혐오·배제야말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는 적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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