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찬 목사
 우리한국교회가 고쳐야 할 병들 중의 두 번째는 물량화(物量化)된 의식이다. ‘물량화’란 두지 흐름이 합하여 표현한 말이다.

첫째는 교회가 물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헌금을 많이 하면 축복도 많이 받는다고 강조하는 중세 가톨릭의 타락 현상의 만연과 예배당을 건축하는 등의 때에 헌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의 경우를 포괄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교회들이 헌금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물질의 풍요 여부가 하나님이 복 주심을 판단하는 바로미터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이로 인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거나, 떠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이 사실이다.
인구센서스 결과 지난 10년 간, 천주교는 신도 213만이 증가한 반면, 기독교는 15만6천명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통계가 있다. 심각한 문제는 증가한 가톨릭 신자들 중에 반수 이상이 기독교로부터 옮겨 간 신도들이란 보고다.

기독교에서 천주교로 옮겨간 사람들의 경우 물론 본인들에게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게 옮겨 간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기독교가 깊이가 없고, 시끄럽다는 것과 헌금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대답은 우리들로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물량화의 두 번째는 교회가 지나치게 대형화를 추구하여 왔다는 점이다. 일컬어 성장제일주의가 이 범주에 해당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교회의 대국민적인 이미지를 바람직스럽지 못한 쪽으로 이끈 책임의 중심에 대형교회들이 있다. 대형교회가 나쁜 것이 아니다. 대형화를 이루기 위하여, 또는 유지하기 위하여 성경적 가치관 보다는 자본주의적 논리나, 현상으로 세상을 압도하고, 지배하려는 듯한 교만과 오만 그리고 그릇된 방향의 성장제일주의 태도는 교회와 세속의 기업경영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고 여기게 하여, 교회에 대한 반감과 적대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 질병중의 세 번째는 세속화(世俗化)이다. 흔히들 그리스도인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고, 유행가를 부르는 등의 행위를 세속화인 것처럼 생각하나 세속화의 실제는 그런 류의 피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인 역사의식 그리고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따라 살지 않고, 세속적인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세속화의 본류다.

아무리 교회생활을 오래했어도 그가 가진 역사관, 물질관, 복(福)관(?), 내지 인생관이 성경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기준을 따라 산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라고 말할 수 없다. 겉모습만 그리스도인이지 실제는 세속인(世俗人)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유하게 사는 것의 다른 표현인 ‘잘 사는 것’ 보다 우선 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잘 살기’를 거부할 이유가 없으나 먼저 거쳐야 할 것이 “바로 살기”이다. 바로살기를 기초로 잘살아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 바른 가치관과 바른 삶의 방식이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사는 것’만 추구하다가는 잘 살게 된 후에 온갖 정신적인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필연인데, 지금 우리가 혹독하게 경험하고 있는 가치관의 혼란과 전도 속에 겪는 세속화 현상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 삶의 방식을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성경적 기준에 합당하게 사는 데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1917년 춘원 이광수선생이 당시의 월간지《청춘》의 11월 호에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글을 실었다. ‘금일 야소교회의 결점’이란 제목의 글 중에 춘원선생이 교회에 대한 실망과 더불어 당시 기독교의 결점으로 4 가지를 지적하였다.

교회의 계급주의적 성격과 교회 지상주의적 사고방식, 기독교 지도자들인 교역자들의 무식함과 미신적 경향을 들었다.

그 중에서 계급주의적 성격이라 함은 목회자를 마치 양반이나 귀족처럼 인식하고, 교인들을 상민이나 하인인 것처럼 인식하거나 목회자를 군대의 장교 격으로 높이고, 교인들을 병졸처럼 인식하는 경향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런 경향은 지금도 기독교 안에 팽배하지 않은가

우리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써의 교역자상을 말씀하셨으나 한국교회에서는 섬김을 받는 자로써 전도(顚倒)된 목회자상을 부정할 수 없다.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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