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창 주 교수

출애굽기에는 ‘지팡이’가 20여 차례 언급되는데(출 4:2; 7:9; 8:5; 9:23; 10:13) 그 중 절반 이상이 ‘손’과 함께 사용되었다(출 4:2,4,7,20; 7:15,17; 14:16; 17:19). 모세는 물론 아론 역시 지팡이를 들고 이스라엘을 지휘한다(출 7:9; 8:1,2,12,13). 구약에서 지팡이는 ‘마테,’ ‘마켈,’ ‘셰베트’ 등 유사한 단어들이 섞여 쓰인다(출 4:2; 12:11; 21:20). 한글 채찍, 막대기, 지팡이 등으로 번역된다. 위 본문의 지팡이(마테)는 동사 ‘펴다’는 뜻의 ‘나타’(natah)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지팡이는 지도자를 상징하는 물건으로 힘과 능력을 함축하는 용어다.

지팡이는 양치는 목자의 필수 장비였다(레 27:32; 삼상 18:40; 겔 20:37; 미 7:14; 시 23:4). 즉 양무리를 이끌 때 긴요하게 쓰였을 뿐 아니라 습격하는 동물들을 물리칠 때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한편 여행자에게도 막대기는 반드시 필요했다. 길을 가로 막은 방해물을 치우거나, 가파른 길을 오를 때, 또는 위협적인 환경을 벗어날 때 활용되었다(출 12:11; 창 32:11; 삼상 14:27; 막 6:8). 노인이나 다친 사람들은 지팡이를 의지하며 걸을 수 있고(출 21:19), 잘못한 사람에게 혼내주거나(출 21:20; 잠 13:24; 삼하 7:14) 동물을 때릴 수도 있다(민 22:27). 하나님은 다윗과 계약을 맺으며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신다고 경고한다(삼하 7:14). 이 구절에서 ‘매’는 모세의 지팡이와 동의어다.

출애굽기 4장에서 모세의 손에 있던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되었다(3절). 지팡이와 뱀은 어떤 관계일까? 그리스 신화에도 지팡이와 뱀이 언급된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들고 있는 ‘뱀이 감고 도는 지팡이’는 보통 병원이나 의료단체의 상징으로 활용되는데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필 지팡이와 뱀의 결합일까? 그 이유는 이렇다. 제우스의 번개를 맞고 죽은 고린도 왕을 아스클레피오스가 치료할 때 뱀이 들어오자 그의 지팡이로 때려죽였다. 그러자 곧 다른 뱀이 약초를 물고 들어와 죽은 뱀의 입에 대자 다시 살아났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 약초를 고린도 왕의 입에 물려 살려냈다. 그 후 자신의 지팡이에 뱀을 휘감아 의술 곧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뱀은 고대인들에게 신비로운 동물이었다. 왜냐하면 뱀이 허물을 벗고 다시 살아날 뿐 아니라, 물과 뭍에서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에서 삶과 죽음, 또는 건강과 질병의 두 차원을 통합하는 상징성을 획득하였다면 전자에서는 회춘 및 불멸성을 확보하게 된다. 따라서 치유, 지혜, 불멸, 영원한 젊음, 죄, 죽음 등 다양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와 같은 뱀의 양면성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의 영역과 직접적으로 맞물린다고 보았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중세에 교회로부터 금지되다가 현재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와 함께 병원, 의술과 관련된 단체에서 두루 쓰인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지팡이는 뱀으로 변하였다. 모세는 화들짝 놀란 나머지 본능적으로 피한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꼬리를 잡자 이내 지팡이로 바뀌었다. 이처럼 모세의 두려운 순간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랍비들은 뱀을 창세기 3장과 관련시키며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것은 모세가 마치 뱀처럼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Exodus Rabba III.12> 하나님이 모세의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신 이적은 단순히 바로와 그의 신하들을 두렵게 하려는 마술이 아니다. 그에게 이스라엘의 해방을 통하여 삶과 죽음을 맡기신다는 위대한 사명과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의식(ritual)이다. 그리하여 무섭고 떨리며 위축되는 순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5절).

모세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신한 이유는 명백하다. 지팡이는 광야 길을 열어주며 의지할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뱀처럼 놀라게 하거나 때릴 수도 있다. 지팡이는 모세가 양치는 목자였기 때문에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 지팡이를 뱀으로 둔갑시킨 것은 모세를 두렵게 하며 도망하게 하려는 데 있지 않다. 뱀의 똬리와 치명적인 독이 경계심을 갖게 하지만 동시에 허물을 벗고 다시 사는 상징이라는 이중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다. 지팡이와 뱀의 변증적 관계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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