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추구하던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자발적인 양식이라고 주장했다. 1519년부터 1524년 사이 독일 각처에서는 루터와의 토론이 쟁점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학문적인 논쟁에 대해서 학자를 옹호하자는 입장이었다. 종교개혁과는 멀리 떨어져서 있던 기독교 휴머니즘의 대표자 주자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글에 대해서 별로 호감을 표명하지도 않았었다. 1522년 초, 루터는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주장을 공격한다면, 결코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1524년 봄, 루터는 에라스무스에게 휴전을 제안했다. 만일 루터의 주장들에 대해서 에라스무스가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루터도 그에 대해서 조용히 입을 다물 것이라고 제안했다.

1524년 9월, 에라스무스는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De libero arbitrio diatribe sive collatio)을 발표했다. 에라스무스는 자신이 고민하던 인간의 본성 문제를 거론하면서, 르네상스 휴머니즘에 심취한 당대 최고 지성의 재능을 발휘하였다. 에라스무스는 그러나 루터는 타락한 인간의 부패에 관하여 극복하는 방법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 뿐이라고만 강조하였으며,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한다는 일방적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며, 이런 것은 교리주의이기 때문에 치명적 약점이라는 것이다. 루터의 신학방법이 잘못되었기에 이런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고 에라스무스는 공격하였다.

에라스무스는 초대 교부들이 주장했던 자유와 은총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에라스무스는 과연 어떤 사람의 성경해석이 가장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 논문에서 에라스무스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에라스무스는 모든 사람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예정론은 성경 안에 담긴 가르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사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하심이 사건들의 원인이 된다는 믿음에도 반대하였다. 또한 사람의 자유의지가 기초가 되기 때문에 회개, 세례, 회심 등의 교리들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은총이란 단순히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가까이 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선과 악 사이에서 자유의지를 사용하도록 지지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 것을 택할 수도 있도록 되어졌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1525년 12월, 『의지의 노예에 대하여』(De servo arbitrio)에서 에라스무스의 글을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루터의 반론은 에라스무스의 글보다 무려 네 배나 더 되는 긴 논문이 되었다. 루터는 모든 인류는 타락함으로서 인간의 이성이 손상을 입은 것만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당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서 정죄 외에는 다른 운명이 없으며, 구원을 얻을 만한 어떤 공로도 하나님께 바칠 수 없다고 폭로했다.

만약 그리스도가 그의 피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 모든 인류가 잃어버림을 당했다고 고백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거나 혹은 사람의 가장 쓸모없는 부분을 위한 구속주였다고 말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신성모독이자벌 받을 행위이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는 인간이란 이성적이라고 주장하는 휴머니즘, 즉 기독교 인문주의 철학자였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지만, 그들의 이성이 완전히 부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손상되었을 뿐이라고 보았다. 그리스도에게로 돌이키는 것은 인간의 공로가 된다고 보았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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