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1998년 월드컵 홍보를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2002km를 휠체어로 달리고, 1999년에 한일 종단 4,000km에 도전했던 ‘휠체어 개그맨’ 박대운(34)씨가 12일 서대문구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신부 최윤미(31)씨와 결혼했다. 신부가 얼마나 이쁘냐는 질문에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다운 건, 아내될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며 “정말 서로 더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며 살겠다”고 신부측의 결사적인 반대를 설득해낸 소설같은 사랑이야기이다.

굳이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이름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의 이야기가 한결 귀가 편하고 마음이 즐거운 것은, 조금 배웠다는 것들이 근본도 모르고 함부로 제 나라 욕이나 하고, 제 잘난 맛에 날뛰는 철없는 이상주의자들에 무모한 정치 실험이나 하고, 그 바람에 상처입은 민초를 서로 네 탓이라 하는 국회를 보는 것 보다야 낫기 때문이다.

6.25전쟁, 5.16 박정희 쿠데타, 5.17 전두환 구테타, 5.18 광주항쟁, 6.15 남북정상 회담.... 회고해 보면 우리에게서 5월과 6월은 왜 이토록 무섭고 서럽도록 잔인한가? 착한 백성인데, 서러움도 참을 줄 알고, 가난도 견딜 줄 알고, 남에게 해로운 일을 하면 부끄러워할 줄도 아는 백성인데, 왜 이토록 우리 역사의 흔적들은 민초들의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일까? 왜 많은 사람들이 서두의 감동스런 이야기는 스쳐가는 미담 정도로 여기고, 역겨운 정치 이야기에는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정치만이 우리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치가를 욕해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듯해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그 정치적 결정이 나의 삶의 질을 치명적으로 결정하며, 종교조차도 그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잘것없은 구의원 한 사람이 가져오는 영향력도 작지 않은 데 하물며 중앙정치이겠는가? 그래서 퇴근하는이들의 술자리 안주는 어김없는 정치적 편린들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정치이야기는 우리 일상이 되고 있다. 아름다운 나라를 누가 만들 것인가? 이 작고 소소한 소망이 우리가 정치를 논하는 현실적 이유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안정된 사회, 안전한 사회, 그리고 작은 정이라고 나누며 살 수 있는 행복함이 고작이다.

얼마 전 필자는 미국을 다녀왔다. 그런데 필자의 눈에 들어온 휘발류 가격표가 들어왔다. 필자가 16년 전 미국에서 살았을 때의 가격보다 딱 1달러가 오른 가격,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물론 자국에서도 엄청난 물량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고 세계의 원유를 장악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동시에 우리나라의 휘발류 가격이 오버랩되면서, 우리는 언제즈음이 이렇게 안정된 사회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하는 배 아픈 부러움이 몰려왔다. 안정된 사회, 안전한 사회, 소소한 행복이 있는 사회가 이 시대에 그렇게 어렵다는 말인가? 결국 정치인의 무능과 탐욕 때문이다.

필자가 가끔 들리는 중국의 굴기 속도는 무서울 정도이다. 미국의 심각한 견제를 받고는 있지만 그들은 충분히 그것을 넘어설 것이며, 그 저력은 향후 한반도의 위협이 될 것이다. 어설픈 북한이 개방이 중국의 동북 삼성에 편입될 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절박하게 다가오는 현실에서 이제 이름없는 민초들의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세계사의 흐름은 민초로 하여금 언제까지 손놓고 정치인들의 무능과 탐욕이 만들어내는 이 되지 못한 현실을 방관할 수는 없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나라를 망친 망국의 원흉은 왕과 대신들이며, 피눈물로 나라를 지켜내고 살려낸 이는 이름없는 백성들이었다. 여전히 지금 이 시대에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듯하여 진정한 민초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느낄 따름이다.

그리스도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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