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승 자 목사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평화의 종교이다. 사랑처럼 위대한 힘을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랑은 나라 간의 전쟁도, 가족 간의 다툼도, 부부간의 갈등도, 민족 간의 분쟁도 녹여준다. 사랑은 화합으로 이끌어 평화의 시대를 연다. 예수님이 원했던 세상, 하나님의 세상이 바로 여기에 있다. 부부 간에 갈등을 빚다가도, 한사람이 사랑으로 다가서면, 해결되는 것도 사랑이 가장 위대한 힘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주일날마다 목사의 설교내용 중 상당부분이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모두가 인간을 사랑(아카페)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생명까지도 내어 주셨다. 그것은 조건 없는 무조건인 사랑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 사랑으로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가 주었다. 때문에 그 사랑은 위대하다.

미국의 시인이며, 철학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사랑의 이야기는 오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도 남는다. 그는 어린 시절 집에서 기르는 송아지가 외양간을 나와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송아지를 잡아 외양간에 넣으려고 안간 힘을 썼다. 하지만 어린 에머슨의 힘으로는 아무리 밀고 당겨도 송아지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에머슨은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 사람은 밀고 한 사람은 당겨 보았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송아지는 비록 작아 보이지만 한두 명의 힘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연세 많은 할아버지가 다가와서 자신의 손가락을 송아지 입에 물려주었다. 송아지는 젖을 빨듯이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손가락을 물은 채 천천히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에머슨은 그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그렇게도 간단하게 송아지를 유인한 것이냐”고 물었다.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송아지는 잠시 자기 어미의 젖을 물고 있다고 착각을 한 거지. 자기를 사랑해주는 어미가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되었던 함께 따라가기 마련이란다."

따뜻한 사랑의 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다. 사랑은 그저 따뜻한 손길로 만져 주는 것만으로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세상에는 누구나 마음속에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엄청난 힘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우리의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물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 10:27)

이 성경귀절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위로는 무게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옆으로는 무게중심을 이웃에게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분열과 다툼으로 얼룩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햇빛중앙교회•본지 후원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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