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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봉(1962∼)의 '지구의 눈물'[평설 문현미 교수]
문현미 시인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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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31  09: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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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눈물

둥근 것들은
눈물이 많다, 눈물왕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칼로 수박을 쪼개다 수박의 눈물을 만난다
어제는 혀에 닿는 과육 맛에만 취해
수밀도를 먹으면서 몰랐지
사과 배 포도알까지 둥근 몸은 모두
달고 깊은 눈물왕국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걸
 
나는 눈물왕국을 사랑하는 사람
입맛 없을 때마다 그 왕국에 간다
 
사람 몸 저 깊은 곳
생명의 강이 되는 눈물,
그리하여 사람 몸도 눈물왕국 되게 하는 눈물,
 
그렇기 때문인가? 사람들은
둥근 것만 보면
깎거나 쪼개고 싶어한다
 
지구도 그 가운데 하나다
숲을 깎고 땅을 쪼개 날마다 눈물을 뽑아 먹는다
번성하는 문명의 단맛에 취해
드디어는
북극의 눈물까지 먹는다

   
▲ 문 현 미 시인
눈이 시리도록 맑고 높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질 때가 있다. 너무 맑아서, 너무 높아서, 너무 푸르러서 그 절대의 풍경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가을날에는 가을 사람이 되어 계절 속으로 스며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을의 열매는 둥글다. 둥글어서 모양도 좋고 맛도 달콤하다. 그런데 시인은 ‘둥근 것들은 눈물이 많다’고 한다. 더욱이 ‘눈물왕국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참 놀라운 천착이 아닌가. 둥근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가면 입안에 침이 절로 고인다. 외형적 모습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과는 전혀 다른 시인의 눈! 예사롭지가 않다. 둥근 것 속에 깃든 눈물을 찾아내다니.

한 송이 포도가 영글기까지 얼마나 많은 비바람을 견뎌야 했을까. 얼마나 강한 햇살을 받아야 했을까. 새와 벌레들도 단맛에 끌려 상처를 내기도 했을 것이다. 시인은 ‘눈물왕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처한다. 눈물왕국을 사랑하는 시인이야말로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기에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비의를 캐낼 수가 있다. 피조물이 생명체로 탄생되는 과정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한다. 그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는 삶이고 자연인데 우리는 그걸 잊고 살거나 아예 모르고 지나간다.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남이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 시인이기에 노발리스(독일 낭만주의 시인)는 시인을 인간과 신을 연결시켜주는 ‘사제’라고 일컬었다. 배시인은 그런 점에서 가히 ‘시의 사제’로 불릴 만큼 특별한 눈과 귀를 지니고 있다.

시인은 열매 속에 깃든 눈물과 사람 몸 깊은 곳에 있는 눈물을 동시에 간파한다. 여기서 반전이 나타난다. 둥근 것의 눈물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 ‘깎거나 쪼개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구도 그 중 하나라는 사실을 담대하게 표현하고 있다. ‘숲을 깎고 땅을 쪼개 날마다 눈물을 뽑아 먹’기까지 한다고 하니 시상의 전개가 매우 역동적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 관점으로 나아가는 상상력의 진폭이 넓고 크다. ‘지구의 눈물’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시는 사람으로 인해 훼손되고 파괴되는 현상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열매들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시끄러운 구호나 단체의 집단 움직임이 아니라도 좋은 시 한 편이 이토록 잔잔하게 심금을 울린다. 가만히 따르는 물이 잔을 더 가득 채우듯 고요한 시가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가을이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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