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전 9시 올림픽파크텔에서 서울동남노회 정기노회가 개막되었다. 명성교회 세습문제로 지난해 가을노회부터 파행을 부른데다 최근 MBC PD수첩 보도로 교계 뿐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까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노회이기에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그런데 노회 집행부는 기자들을 개회예배조차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노회 서기는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으나 최근 노회 파행사태와 관련한 문제들로 인해 노회측이 얼마나 과민 반응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회예배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총대들이 차를 마시기 위해 밖으로 나오자 그동안 밖에서 대기했던 기자들이 일제히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회의가 시작되면 바로 퇴장 조치가 내려질게 뻔한 상황에서 방송사 카메라맨들은 회의장 이곳저곳을 조금이라도 더 영상으로 담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그런데 특정 교회에서 동원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취재 기자와 방송사 카메라를 회의장에서 물리력으로 끌어내는 과정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일부 총대들이 취재를 왜 막느냐며 집행부에 항의하고 본회의에서 취재를 허용할지 말지를 결정하자고 제안했으나 노회 집행부의 묵살 속에 폭력에 가까운 취재방해 행위는 계속되었고, 급기야 노회원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며 경찰까지 출동하는 사태로 번졌다.

세상에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기능은 감시와 견제이다. 교계 언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총대들만이 참석해 토론하고 결정하는 회의라도 그 과정은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에 공개하는 게 마땅하다. 만약 취재를 허용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서 다수의 의견으로 불허를 결정했더라도 이를 취재기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방해를 넘어 폭력까지 행사한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다.

사회 언론이 권력의 통치행위와 사회 전반을 감시하듯이 교계 언론도 한국교회가 바로 가도록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은 감시행위를 통해 교회 또는 교회기관에 위임된 여러 기능들이 오남용되는 것을 견제하고 동시에 불법과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도 일부 교계 지도자급 인사들은 언론을 마치 자기들의 부속물이나 심부름꾼 정도로 여기는 그릇된 언론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언론은 때로는 자신을 위한 홍보와 미화의 수단으로, 때로는 그 어떤 불의도 눈감아주거나 반대로 왜곡 선전해주기를 바라는 도구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취급을 받게 된 것을 모두 언론 외적인 문제로 돌릴 수만은 없다. 교계 언론이 존 밀턴이 지적한 17세기 당시의 무소불위의 종교권력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제4의 권력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교계에 만연한 불의와 부조리의 관행들에 대해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다했더라면, 한국교회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고, 언론을 마치 ‘애완견’ 취급하는 그들의 태도도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본지가 어느새 창간 6주년에 맞았다. 지령을 더할수록 스스로 비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보다 성숙한 언론의 면모를 갖춰나갈 것을 약속드리며,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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