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요 한 목사

11월은 결실의 계절이며, 감사의 계절이다. 11월 셋째 주일은 대부분의 교회가 추수감사절로 지킨다. 이날은 분명 ‘축제의 날’이다. 문제는 많은 교회가 추수감사절을 교회의 모자라는 재정을 충당하는 날로 변질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추수감사절을 ‘축제의 날’이라고 생각하는 교인들도 그리 많지 않다. 한국교회가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맞추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추수감사절은 먹을 것이 풍성해, 이웃과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축제의 날임에 분명함에도, 배부분의 교회는 교회 안에 갇혀 의미 있는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있지 못하다.

교회는 풍성한 계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교회로 초청해 함께하는 밥상공동체를 이루고, 이들과 축제의 날을 보내면,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보잘것 없는 사람들의 일용할 약식을 늘 걱정하며, 이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그래서 일부 교회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교회로 초청하는 것이다. 교회는 풍성과 과일과 떡을 준비한다. 또 일부 교회는 감사헌금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 놓는다.

감사절은 1년 동안 노동하며, 소득을 있게 해 준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감사헌금을 다른 때보다 많이 드린다. 문제는 감사절에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들이 ‘마이너스 재정’이라는 이유을 내세워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유태인들은 그들의 민족적 경험과 감사의 축제 전통에 따라 3대 명절을 모두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과월절은 민족해방에 대한 감사절로, 봄의 맥추절은 첫 열매의 수확에 대한 감사절로, 초막절은 1년 중 가장 큰 절기로서 가을에 모든 곡식과 올리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한국교회의 감사절의 의미를 여기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성서에 나타난 감사절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모두가 민족적인 축제일 지키고 있다.

성서는 추수한 이후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이삭은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감사절도, 한민족 모두의 감사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한국교회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몰각한 나머지 추수감사절을 영미선교사들이 가져다가 준 날짜에 드리고 있다. 그렇다고 오늘의 한국교회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교인들에게는 감사절이 헌금을 더 드리는 날로 생각하고 있다. 감사절예배는 교인들만을 위한 예배가 되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추수한 오곡백과를 가져와서 서로 나누는 전통도 사라졌다. 오직 헌금만을 위해서 있는 절기이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을 한국적 상황에 맞추어 중추절에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야만 첫 수확물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은 물론 일가친척 모두가 나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을 교회의 절기로 지키게 된 것은 영미교회가 들어온 이후인 1904년 부터이다. 처음에는 장로교 교단이 11월 10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던 것이, 1914년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하는 뜻에서 11월 셋째주 수요일로 변경해서 지켰다. 그 후에 수요일에서 주일로 바꾸었다. 오늘 한국 교계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추석(중추절)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일부 교회에서는 이미 이를 시행하고 있다. 이제라도 추수감사절을 한민족 모두의 축제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헌금은 개교회 안에 매몰시키는 것은 여기서 중단하고, 이웃들과 함께하는 축제를 통해 감사절의 의미를 살려야 한다. 올해 감사절만큼은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축제가 되었면 하는 마음이다.

예장 합동해외총회 총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