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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주 교수] 아바드(דבע)의 두 가지 의미(출 3:12; 4:23; 7:16; 10:7,8,11,24)
김창주 교수  |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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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3  15: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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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창 주 교수

모세가 바로를 설득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키려는 이유는 뚜렷하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히브리어 ‘아바드’(דבע)로 표기된 점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아바드는 ‘일하다, 섬기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명사로 ‘노예, 시중드는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마 팔레스틴의 여러 언어들이 뒤섞이는 과정에서 두 가지 다른 개념이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페니키아어 아바드는 ‘종 또는 신하’를, 시리아어는 ‘봉사하다, 수행하다’를, 아람어는 ‘예배하다, 따르다’ 등을 뜻한다. 이와 같이 동일한 어근이 사뭇 다르게 활용되다가 습합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아바드는 대등한 개념의 한글로 번역하기 어렵다. 이 낱말의 결이 다른 ‘섬기다’와 ‘일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살려내야 하는데 우리말에서 그 둘을 충족시킬 수 있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70인역>은 아바드를 라트류오(latreuw)와 디아코네오(dia,konew) 등 경우에 따라 몇 가지로 번역하여 그 의미를 살려낸다. 후자는 ‘봉사하다, 섬기다, 시중들다’로, 전자는 ‘섬기다, 예배하다’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스어 ‘라트류오’가 하나님을 목적어로 취하면 예배하다는 뜻이 명료해진다. 이런 점에서 <70인역>은 아바드의 의미를 살린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라트류오에서는 마음과 뜻을 다해 상대를 기쁘게 한다는 뜻을 읽어낼 수 있다. 라트류오에는 아바드의 히브리적 의미가 훨씬 강조된 뉘앙스다. 라트류오가 상대의 존재감을 드러내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행위라면 아바드는 비교적 단순히 일하고 받든다는 뜻에 초점을 둔다.

한편 제임스왕 성서(King James Version)는 아바드를 ‘serve’로 옮겼다. 알려진 바와 같이 제임스왕역은 영국교회가 예배에 활용할 목적으로 번역한 성서다. 이점에서 제임스왕역이 serve로 옮긴 것은 절묘한 번역이며 최상의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히브리어 아바드에 담긴 ‘섬기다’와 ‘일하다’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serve가 기본적인 의미 외에도 ‘대접하다, 복무하다, 봉사하다, 집행하다’ 등으로 심지어는 테니스와 배구에서 상대 진영에 맨 처음 공을 던지는 행위까지 포함된다. 성경의 아바드 의미가 현재 다양하게 쓰이는 서브까지 확대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17세기 영어에서 ‘예배하다, 일하다’는 히브리어 아바드를 반영한 번역으로 간주된다.

아바드의 명사형 ‘아보다’는 강요된 노동(출 1:14; 대상 27:26; 시 104:23), 종이나 노예의 일(출 5:11; 레 25:39; 신 26:6), 안식일에 금지된 일(레 23:7, 8, 21, 25, 35, 36) 등을 가리키고, 우상이나 권력의 숭배(대하 12:8), 유월절 예식(출 12:25-26)을 비롯한 하나님 예배(출 13:5; 수 22:27)를 포함한다. 나아가 레위인 등 사제들의 임무(민 4:19, 49; 8:11; 대상 24:3, 9)도 아보다에 해당한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명사 에베드가 되면 종, 또는 노예를 뜻하고(창 9:25; 26:15) 조공 국가(삼하 8:2,6)를 가리킬 수도 있다. 눈여겨볼 점은 ‘종’이 하나님과 관련되면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라로 번역해야 옳다는 사실이다(창 50:17; 왕하 9:7; 시 34:22; 69:36; 사 52:13; 54:17).

베네딕트 수도회(Order of St. Benedict)의 표어는 알려진 대로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긴다는 것은 생활 속의 일을 통해 드러나야 하며, 자신의 생업에 하나님을 예배하듯 정성을 다하라는 뜻이리라. 어떤 직업이나 귀천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수도회 정신은 중세 교회개혁가들에게도 전해졌고 소명이란 성직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직업이 곧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직업 소명론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출애굽기에서 ‘섬기다’는 아바드를 어떻게 이해할까? 모세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을 보내달라는 요청은 바로를 설득하기 위한 명분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 예배는 출애굽의 주요 목표로서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출 4:23; 5:1,3,8,17; 7:16,26; 9:1,13,; 12:31). 아바드에 함축된 두 가지 의미는 대상에 따라 확연히 갈린다. 그 대상이 바로라면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감내하는 일로 인해 노예가 되지만 하나님이라면 예배하고 섬기며 기쁘게 일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되게 한다. 출애굽의 직접적인 동기는 ‘종 되었던 집’(출 20:2)에서 겪었던 비참한 ‘일’(아바드)이지만 그 목적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예배’(아바드)에 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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