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곁에 있는

천리만리 멀리 있어도
늘 곁에 있는

가장 고요한 밤
소리 없이 찾아오는

영혼의 등불을 켜고
얼굴을 비추는

말없이 바라보면서
눈으로 말하는

천리만리 멀리 있어도
늘 곁에 있는

-시집 『의사도 메스도 없는 병원』에서

* 최진연: 『시문학』 등단. 시집 『용포동 1박』 등 16권 상재. 한국크리스천문학상. 시문학상

▲ 정 재 영 장로
말하려는 대상이 생략되어 있는 작품이다. 앞부분에 술어부분만 있을 뿐, 정작 그 대상이 구체적으로 안 보인다. 그래서 시 특성중 하나인 애매성(모호성 ambiguity)를 가진다. 이런 괄호를 만드는 일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려는 것이다. 읽는 사람에게 따라 종교대상이거나, 연인이거나, 신념이거나 모두 해당이 되는 것이다.

특히 종교시에서 그 대상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물이다. 소위 천상적인 이미지를 지상적인 이미지로 변용시켜야 하는 현대시 특성상 그렇다.

이 작품의 형식상 구조를 보면, 이질적이고 상극적인 이중구조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은 이질적인 이미지를 융합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 연과 마지막 연에서 거푸 말하고 있는 ‘멀리 있으며 동시에 곁에 있는 대상’이 화자 안에서 하나로, 공간과 시간적 동시성을 가진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종교적 대상으로 의탁한다면, 초월적인 신이 인간 안에 임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소부재성과 편재성을 가진 신의 위치와 개인적인 관계를 말함이다. 이것은 무한한 상상으로 시적 공간구조를 확장시키려는 목적을 가진다. 따로 있음과 같이 있음의 비논리성도 현대시에서 중요한 아이러니며, 역설이다.

4연에서 말없음과 말함의 이중구조도 역시 마찬가지다. 입은 말없고, 눈이 말하는 구조도 역시 동일하다. 청각성과 시각성의 모순적이며 역설적 기능으로 효과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가 산문과 다른 것은 비유를 동원함인데, 이 작품은 이질적 요소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융합시학 이론 중 하나다. 예시처럼 좋은 시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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