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이스라엘의 신앙역사에서 항상 문제가 된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이다. 그런데 이 ‘죄’라는 것이 시대 변천에 따라 조금씩 진화한 것을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죄의 성격이 인간의 무지와 악한 본성으로 인해 드러난 것들이다. 하지만 국가가 형성되고, 권력이 분화되고, 그리하여 예언자 시대가 되고, 제사종교 시대가 되면서부터 죄의 양상도 달라진다. 법이 제정되고, 신앙의 형식이 갖춰지면서 죄도 예사로운 눈으로는 알아챌 수 없도록 정교하게 진화한 것이다. 이사야는 이 진화한 죄, 지능적이어서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죄, 분명히 죄이면서도 합법으로 위장한 죄에 대해서 비탄해 한다.

요시아의 종교개혁 시대이다.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불자 정치인들과 사회 지도층 사람들은 어느 순간 신실한 신앙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들은 우상을 폐기했고, 율법을 지키는 데 열심이었다. 절기마다 격식에 맞게 제사를 드리고, 율법의 말씀을 삶의 규범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는 겉모습에 불과했다. 그 모든 게 중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고, 마음의 회개로부터 나온 행위가 아니었음은 물론 마음으로부터 드리는 제사가 아니었다. 저들의 생활은 겉과 속이 달랐다. 겉으로는 혼탁한 나라를 바로잡고, 나라의 자존을 지키는 척했지만, 뒤로는 강대국 이집트와 뒷거래를 했다. 백성들의 고초를 살피는 척 하면서 자신들의 이권과 권력 쟁취에 몰두했다. 이사야의 표현대로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사 29:15)는 식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이사야는 이들을 향해 말하기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사 29:14)고 탄식한다. 그들은 스스로 영특한 척 했지만, 실은 ‘자기를 이간시키고’ ‘자기를 눈멀게 하는 자들’ 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하는데, 당장 육체적인 고통이 아닌 그들의 마음과 영혼과 지혜가 공허하고 혼란케 하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신병자들이 된다는 것이니 어쩌면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겪게 될 벌 가운데서 이보다 더 큰 벌도 없지 싶다. 오늘날도 명색이 지도층 사람의 말임에도 과연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러고 보면 인간이 자기 꾀를 믿고 지능적으로 지은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도 지능적으로 벌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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