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영 목사
신명기는 모세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신 34:1-8). 그런데, 모세처럼 위대한 인물의 최후를 그리는 대목치고는 너무 쓸쓸하다. 모세는 위대한 예언자였고, 위대한 정치 지도자였으며, 갖가지 악조건에서 고난을 승리로 이끈 명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율법을 제정하여 만인을 법 앞에 평등한 존재로 세운 인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에게 당신의 영을 ‘두시고’ 그를 인도하셨다.

그처럼 위대한 인물인데도 그의 마지막은 그를 위해서 남겨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가 바랐던 가나안 땅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다. 그의 무덤도 남겨두지 않았다. 모세가 죽었다고 세상이 달라진 것도 없다. 신명기는 비정하게도 모세를 뒤이어 여호수아를 등장시키고 있다. 더더욱 안타까운 일은 모세의 죽음은 백성들의 죄악을 대신한 죽음이라는 해석이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위해 일생 동안 헌신한 이에게 아무런 공로나 칭찬도 남기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물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모세를 보면서 하나님의 ‘가혹하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런 모습들이 성서가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진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는 매 시대마다 특정 인물을 통해 백성들을 구원으로 이끌어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특정 인물을 절대화시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모세가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함에도 모세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일뿐이다.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 만일 모세를 섬긴다면 모세를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은 이런 배경을 지니고 있다. 절대 권력자를 신으로 섬기는 세계에서 인간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유일신 신앙의 근본이다. 육을 지닌 인간은 그 시대의 소임을 마치면 반드시 ‘떠나야’ 한다. 떠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지 남아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우상이요 사탄이다. 한국교회의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은퇴하고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걸 보면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삼일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