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교인 수는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한때 1천2백만명이라고 했던 기독교인 수는 천만 명 밑으로 떨어진 뒤에는 아예 정확한 집계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해마다 주요 교단 총회에 보고되는 통계표로 볼 때 엄청난 수적 감소가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인의 감소는 저출산율 등 사회적 영향의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전도의 열기가 전과 같지 않은데다 청소년과 젊은 층이 교회를 외면하는 것이 큰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전에는 부모가 교인이면 자녀도 자연스럽게 교회에 출석했지만 지금은 가정마다 교회에 냉소적인 자녀들을 억지로 교회에 끌고 오기 어렵다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한국교회는 경제적으로 어렵던 70년대에 엄청난 부흥을 이뤘다.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그레함 목사와 조용기 목사 등 걸출한 부흥사들이 강단에 설 때마다 구름떼 같은 군중이 몰리며 한국교회 수적 성장의 일익을 담당했다. 그 당시 노방 전도자들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예수를 믿으면 병도 고치고 잘살게 된다는 단순 논리로 쉽게 전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유 은사 집회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그 많던 금식기도원들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병고치고 복 받는 은사집회를 주로 하던 1세대 부흥강사들이 퇴조하면서 TV에 얼굴이 알려진 만담가형 스타강사들을 섭외 1순위에 올려놓고 이들을 잡느라 교회마다 혈안이다.

교회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일 낮 저녁 예배와 수요기도회를 제외하고도 거의 매일 성경공부, 셀, 구역회, 선교회 모임 등으로 북적였다. 어느 모임에든 끼지 않으면 스스로 소외되는 것 같은 느낌에 교인들마다 집사 권사 장로로 그 직을 유지하거나 신분 상승을 위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교회 내 어떤 모임이든 한 두 개 이상 반드시 참여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녀선교회 조차 조직하지 못해 애를 먹는 교회가 많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교회에서 하는 각종 모임에 시간을 내기 어려운 현실적인 가정에 의무적인 각종 모임은 심적 부담으로 작용해 점점 교회에 흥미를 잃는 경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에서 모이는데 열심인 교회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일 전통적인 저녁예배는 오후예배로 바뀌고, 심지어 금요심야 기도회는 물론 수요기도회 폐지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아직도 70년대식 부흥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급격한 부흥 성장 과정에서 내적 성숙 보다 물량주의 대량주의의 단맛에 흠뻑 빠진 탓이 크다 할 것이다. 교인 수가 많고 헌금이 많이 걷히는 교회는 소위 대형교회로 분류되며 성공했다 하고, 교인 수가 작고 헌금이 적은 교회는 작은 교회로 치부되며 실패라고 여기는 목회자들의 성공방정식이 거리낌없이 통용되는 한 한국교회는 앞으로 어디까지 추락할지 알 수 없다.

한국교회는 달라져야 한다. 겉이 아닌 속에서부터 달라져야 한다. 속병이 깊은데 일회반창고 붙인다고 병이 낫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오래 전부터 앓고 있는 병에 대해 진단하고 나름 처방을 내리지만 스스로 나부터 수술대에 오르겠다고 나서는 목회자를 보기 힘들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12월 2일(주일)부터 세상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된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로 작은 교회를 시작하셨고, 그들을 세상에 파송하며 “금이나 은이나 동과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지 말고, 여행을 위한 주머니나 두벌의 옷과 신발을 가지지 말라”고 명하셨다. 예수님이 명령하신 청빈의 실천은 오늘날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축적함으로써 온갖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병증에 대한 유일한 처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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