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교회는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값으로 주고 산 신령한 곳이다. 교회와 세상의 경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교회는 세상이라는 세속의 흐름에 빠지거나 침몰 하지 않고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없는 듯이 있어야 하는 신령한 곳이다. 살아 있는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교회는 영혼이 살아 있어야 세상이라는 풍파를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문제는 교회가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과 함께 숨을 쉬며 세속화 되어 가고 있음이 심각함이다. 조금 더 늦으면 아예 고장 난 잠수함이 부력의 힘을 잃어 물속에 가라않고 마는 현상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한국교회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나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세속화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 심각하게 진단해야 한다. 제대로 된 진단이 있어야 처방도 제대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를 진단한다면 부끄럽고 민망할 수도 있다. 그렀지만 부끄럽고 민망하다고해서 그냥 못 본체 넘어 간다면 나중에는 그 곪은 부위를 제때 치료치 않아 더 넓은 부위나 신체의 일부분을 절단하거나 몸 전체가 죽을 수도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 어느 정도의 세속화로 인해 본래 교회가 가진 신성과 세상에 대한 소명이 무효화 되어 가는지를 세심히 파악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너무 세상 재물에 탐을 내는 모습으로 보여 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전도를 통해 한번 교회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려고 해도 돈을 내냐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나가려는 마음을 자제한다고 한다. 자신이 나가면 그만큼 기여를 해야 하는데 사실 지금의 가정생활은 부부가 직장생활을 해서 버는 것으로 자녀들의 학비와 용돈 가정의 생활비에 다른 지출은 생각할 여지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도 돈을 내어야 교인행세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다음에 생활에 여유가 있으면 나가 보겠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고 한다.
다음은 교회가 너무 고급스러운 건물을 지어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어딘가 남들이 잘 지어놓은 교회건물 속에 자신은 아무 기여도 없이 무임승차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나가기를 꺼려하는 생각을 가진다고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잘 지어만 놓으면 신자들은 자연 채워진다는 속설이 이제는 옛날 생각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꿈과 희망으로 세상에서 최고의 성전을 짓는다는 각오로 교회건물을 지어 놓아도 이제는 그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그것은 헌금이 성경대로 쓰여 지지 않았던 결과가 그렇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오고 있다는 반증으로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제직들의 명칭도 이제는 좀 거두어드릴 때가 되었다. 한 일 년 정도 나가면 무조건 집사요 그리고 교회에 출석과 헌금과 기여를 잘하면 얼마 안 가면 권사라는 칭호와 장로라는 종교 권력을 쥐어 준다. 그 직명을 받을 때에 거창하게 교회의 설립 기념일이나 아니면 특별한 날을 선정해 임직감사예배를 드린다. 요란한 식과 더불어 무슨 계급을 얻는 것처럼 행사를 유난스럽게 진행한다. 그리고 그 행사에 드는 비용을 모두 제직에 임직되는 수익자 부담으로 하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려면 돈께나 있어야 한다는 항간의 소문이 말해주고 있다. 과연 교회 제직들은 제직이 해야 할 일을 철저하게 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일반 신자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교회 제직 특히 장로나 안수집사가 되면 교역자와 동일한 안수로 생각되면서 권위 의식이 일어나 교역자와 알력이 돌출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의 조직에 폐단이 있으나 묵인해 온 것이 언젠가는 터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교파와 교단의 난립이 마치 세상의 정당이 갈라지는 것 이상으로 우후죽순처럼 자고나면 교단이 등장한다. 이는 기독교의 난맥상을 불신자들에게 설명 할 수 없다. 거기에다 교회의 연합 모임들과 교단의 연합모임이 교권 화 되어 서로 정상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가히 전투적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당시의 교파주의자들과 종교권력가들에게 저주를 내렸는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감투 병에 매몰되는 모습이다. 한국교회의 갈라지는 와중에 기존 교회에 식상한 신자들에게 이단과 사교들이 접근해 세를 불리고 있어도 한국교회는 대책은커녕 신자들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가 개혁 이전의 천주교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 한다는 점이다. 교회 건물의 겉모습의 고급화와 대형화도 그대로고, 교직에 대한 감투욕심은 종교개혁전보다 더 심각한 모양이다. 또한 헌금도 속죄 권 판매와 비슷하다고 보고 있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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