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이 애굽에 내려가…” 라는 말로 시작하는 신명기 26:1-11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지어 추수했을 때,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리면서 낭독한 고유문(告由文)이기도 하다. 이 고유문의 핵심은 물질의 성화에 있다. 제사를 통해 성화된 물질은 소득이 없는 레위인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는 고아, 과부, 객과 함께 먹으며 그들에게 나눠 준다. 소득이 없는 이들이 물질을 시혜한 사람들에게 예속되지 않게 하려는 따뜻한 배려가 엿보인다. 사도 바울도 이 신명기 고유문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물질관, 경제관을 표현한 바 있다(고후 9:6-15). 물질은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가난해서 좋을 게 없다. 바울에 의하면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몸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때문에 물질과 그 물질을 얻기 위한 노동은 반드시 성화되어야 한다. 바울에게서 헌금의 정신은 바로 물질의 성화와 관련이 깊다.

우리는 지금 난폭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시대를 살고 있다. 시장경제가 부를 창출하는 데 아무리 효과적이어도, 물질의 성화과정이 없으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모든 물질은 비록 내가 땀 흘리고, 내 자본을 투자해서 얻은 것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성화가 이뤄져야 한다. 사회적 관점에서 물질의 성화는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분배가 적정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지 않을 경우 불의와 부정이 만연하게 된다. 무엇보다 양극화의 덫에 빠지게 된다.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들, 노동의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유리하는 아람사람으로 전락한다.

물질이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게 아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청년처럼 자기 목숨만을 생각하는 영혼의 가난이 인간성 상실을 가져온다. 우리가 사람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물질로는 가난할지라도 영혼만큼은 부유해야 한다. 개개인에게만 영혼이 있는 게 아니다. 사회가 지닌 공동체의 영성도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저마다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히면 공동체의 영성을 메마른다. 국가가 부강하면 개개인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공동체의 영성이 충만해야 그 가운데서 사는 개개인이 행복하다. 기업이 잘되면 국민이 저절로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기업이 가진 물질이 성화되어야 국민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다.

삼일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